한은노사분규-급한 불 껐지만 난제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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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분규발생 원인과 전망>
중앙은행으로서 막중한 업무를 수행해온 한국은행에서 지난 3개월 동안 끌어오던 노사분규가 5일 간신히 타결됐다.
한은 본점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던 노조측의 각종 격문이 철거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한은은 이번 사태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해결하기 힘든 난제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통화신용정책을 다루는 중추기관으로서 노사분규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일본·서독·영국·프랑스 등의 경우도 중앙은행의 노조는 있지만 쟁의 등 극단적인 사태가 빚어진 적은 없다.
한은분규는 우리 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상황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행원들의 학력간 격차여서 오는 인적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의 남자 행원은 1천여 명으로 이 가운데 대졸출신이 4백50여 명, 고졸출신이 5백50여 명이다.
여기에 여자행원·서무직원·별정직원 등을 합쳐 모두 4천여 명의 대식구를 이루고 있다.
노조는 대졸출신을 배제한 나머지 직원들로 구성되었다.
한은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졸출신들의 가장 이상적인 직장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은이 정책부서 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해지고 사무자동화의 물결속에서 고졸출신들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노조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자신들의 진급 및 전보 문제까지 다루고 고교졸업 행원이 입항4년 후에는 대졸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해왔다(현재는 5년소요).
한은집행부 입장도 매우 딱하다. 시중은행처럼 영업부서가 없어 고졸출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혀줄 수도 없고 이들을 고급두뇌로 전환시키는데도 한계가 있다.
일찍부터 인적구성의 변화를 서둘러야 했지만 여느 국영기관에서 보듯 조직의 경직성 때문에 이것마저 불가능했다.
결국 문체가 커져 한은측이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는 인사·경영권에 「노조가 간여하려는」사태까지 확대된 것이다.
5일 한은은 노사간 단체협약에서 일단 협의회를 구성하는데 합의했으나 앞으로 노조측이 들고나올 인사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다시 분규가 일어날 소지가 없지 않으며, 「건전한 통화금융정책 입안·관장」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한은의 앞날에 관계자들의 우려 깊은 시선이 떠나지 않고 있다. <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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