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정위는 출총제 논의에서 손을 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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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둘러싼 당.정 간의 논란이 부처 간의 의견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경제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출총제 폐지를 제안하자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순환출자를 규제할 대안 없이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자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출총제 폐지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출총제를 조건 없이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공정위는 대안 없는 출총제 폐지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14일 열릴 예정인 '시장경제 선진화 특별작업반'의 4차 회의에서도 결론은 고사하고 논란만 격화될 전망이다.

우리는 이 정부가 진정으로 투자를 늘릴 생각이 있다면 출총제를 조건 없이 앞당겨 폐지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또한 공정위가 검토한다는 순환출자 규제 방안은 오히려 기업 투자를 더욱 억누를 소지가 크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규제의 끈을 영 놓기 싫은 모양이다. 여당은 물론 같은 정부 내의 경제부처조차 출총제를 조건 없이 풀자는데도 더 심한 규제를 도입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태도다.

출총제를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출총제 폐지를 규제 완화가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일종의 특혜라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시각이다. 이런 발상으론 실질적인 규제 완화책이 나올 수 없다. 한편으론 규제를 푼다면서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다른 하나는 규제를 부처의 권한으로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다. 대안 없이 출총제를 폐지하면 당장 공정위의 업무가 줄어들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영향력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경쟁 정책이 본업인 공정위가 집요하게 기업 소유구조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데는 이 같은 조직논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출총제 폐지 논의를 공정위에 맡길 게 아니라 대통령의 결단이나 범정부 차원의 협의 기구로 넘기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