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 BIS 비율 조작 흔적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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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실세 부처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사무실 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의식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그동안 외환은행 관련 수사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금융감독당국에 칼날 겨눈 까닭은=대검 중수부는 3월 서울 역삼동의 론스타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후 검찰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불법 등이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2003년 매각 당시 외환은행장인 이강원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과 김중회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 고위 인사들도 잇따라 소환 조사했다.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었던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도 회계사로부터 현대차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6월 구속된 뒤 검찰에서 계속 외환은행 관련 조사를 받았다. 6월엔 감사원으로부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조작 의혹과 관련한 감사 결과도 이첩받았다.

그러나 전모가 드러나기는커녕 수사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어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와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들은 "론스타를 인수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부실로 문 닫기 직전인 외환은행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었다"며 불법은 없었다고 완강히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7월 말까지 수사를 끝내겠다던 검찰의 장담도 쏙 들어갔다. 대검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11일 브리핑에서 "변양호씨가 상당히 비협조적"이라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변씨와 그 밑 실무자들의 진술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10일 재경부 파일을 통째로 복사해 들고 온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 말이 맞고, 매각 작업의 진실은 무엇인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압박 자료로 쓰겠다는 계산이다.

◆ 감독당국, "감사원이 이미 조사한 일인데…"=현재 검찰은 외환은행 매각의 단초가 된 'BIS 비율'의 조작 여부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3년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9%대에서 갑자기 6.16%로 낮춰진 것과 관련해 당시 상황을 복기하는 식으로 저인망식 수사를 하고 있다.

특히 2003년 7월 '10인 대책회의'가 열린 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얻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재경부나 금감위 등이 인수를 승인하면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채 수사기획관은 11일 "재경부.금감위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만 팔아야 할 정도로 당시 상황이 심각했는지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경부에서 압수한 문서 파일이 결정적 열쇠를 제공할 경우 수사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채 기획관은 김 차관보에 대해서도 "때가 안 돼서 안 부르지, 못 부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이미 감사원이 조사한 문서와 큰 차이가 없다"며 검찰의 전격적인 수색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외환은행 사건은 정책적 판단 문제인데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수색한 것은 재경부를 범죄자 취급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금융감독위 관계자는 "검찰의 수색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홍병기.김준술.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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