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4강 볼' 한국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주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의 주심을 맡았던 가말 알-간두르 이집트 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이 최승호 대사와 축구자료 수집가 이재형씨와 함께 '홍명보 4강볼' 을 들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이 공이 나보다 한국 국민에게 더 중요할 것 같아 기증합니다."

9일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 들른 이집트 축구 국제심판 가말 알간두르(48, 현 이집트 축구협회 심판위원장)는 말했다. 알간두르 심판은 이날 표면은 약간 거칠게 닳았지만 금빛을 간직한 축구공을 최승호 주이집트 한국대사에게 전달했다. 서운한 듯 공을 가슴팍에 다시 안아 보기도 했다.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스페인과 가진 8강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해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꺾고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만들어낸 역사적인 공이다. 당시 승부차기 5번째 키커로 나선 홍명보(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한국팀의 4강 진출을 확정짓는 골을 넣었다. 이 때문에 '홍명보 4강 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홍명보 4강 볼'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데는 축구자료 수집가인 이재형(45,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 기획부장)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관례에 따라 당시 한-스페인전 주심을 본 알간두르씨는 경기 직후 이 볼을 갖게됐다. 동료 심판 등의 서명도 받고 이집트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 씨가 4강 진출볼을 찾기에 나선 것은 2년전부터다. 2004년 에콰도르까지 찾아가 한국-이탈리아 16강 주심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 심판을 설득해 '안정환의 골든볼'을 기증받은 직후부터다.

수소문 끝에 알간두르씨가 이 공을 보관중임을 확인하고 여러 차례 e-메일을 보내 기증을 간청했다. 하지만 축구인으로서 자신이 주심을 본 경기의 볼을 수집해온 알간두르씨의 반응은 차가왔다.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한일월드컵 당시 주심을 본 경기에 사용된 6개의 공을 그는 모두 소장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내주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월드컵 8강전 승자를 결정한 '홍명보 4강 볼'은 자손대대로 물려주고 싶었다"며 강한 애착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씨도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만나 설득하기 위해 무작정 카이로로 날라왔다. "모레노 주심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직접 보고 간곡하게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이씨는 말했다. 지난 7일 카이로 외곽에 있는 알간두르 씨의 자택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4시간에 걸친 설득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인들을 위해 기증해 달라"고 간곡히 수십번을 말했다. 이씨는 또 알간두르 심판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과 함께 이 공을 모든 한국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박물관에 전시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알간두르는 이씨와의 만남에서 한국에 대한 서운함도 표현했다. 스페인과 일부 중동언론들로부터 '오심 스캔들'로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알간두르는 "8강 전 후반 3분에 스페인팀이 기록한 반칙 골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한국 언론이나 축구협회가 자신을 제대로 옹호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해봐라. 스페인 언론은 아직도 내가 오심을 내렸다고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과 축구협회는 침묵하고 있다." 알간두르씨는 불평했다. "나는 스페인 선수가 반칙하는 것을 똑똑히 봤고 골이 들어가기 전 휘슬을 불었다"며 "한국이 공정하게 이긴 게임"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알간두르 씨의 명예회복 노력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이같은 이씨의 약속과 다짐, 그리고 진지하고도 집요한 자세는 결국 알간두르의 마음을 움직여 공을 내놓게 만들었다.

11일 귀국하는 이씨는 "이 공을 한달 정도 여러 곳에서 전시한뒤 한국 축구인들과 상의해 영구 전시할 장소를 물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홍명보 코치가 제일 좋아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mirse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