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무현 정부에 화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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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간부의 이날 회견은 한국에서 높아지고 있는 한.미동맹 와해 우려를 다독이기 위한 취지에서 열렸다. 그러나 발언 곳곳에서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여온 '자주국방' 노선에 대한 불만이 배어나왔다.

그는 먼저 전작권 이양 논의와 관련,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작전통제권을 어느 한쪽이 갖고 있다가 다른 한쪽에 돌려준다는 (한국 측) 표현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평상시에 양국이 각각 작전권을 갖고 있다가 전시 때만 그걸 연합사에 몰아주는 것인데, 본질을 자꾸 흐린다는 지적이었다.

전투요원이 아닌 지원병력을 지칭하긴 했지만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온 2만5000명의 주한미군이 더 줄어들 수 있다(additional reduction)고 언급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실질적인 감축은 아니라고 했지만 '추가 감축 숫자'를 묻는 질문엔 "전투능력을 따질 뿐 숫자는 거론하고 싶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또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독자적인 사령부를 가지려면 양군 지휘체계 간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먼저 구축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도 아직 미진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한국군은 더 많은 책임을 떠맡을 역량이 충분하다"며, 한국의 전작권 이양 요구를 자연스럽다(natural)거나 정당하다(legitimate)고 표현했다. 이양받을 쪽이 준비가 안 됐다는 데도 아무 소리 말고 그냥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미 국방부의 다른 관리는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이양 요구에 처음에는 감정이 상했지만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의 기동군화가 필요한 만큼 이 문제를 국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이양 시점을 한국 안보다 3년이나 당겨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한 군사소식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한.미 동맹보다 자주 국방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에 화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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