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한 방울에 "범인 꼼짝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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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DNA 감식'은 사건 현장에 말라붙은 침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만 있어도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

미궁에 빠질 뻔했던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의 영아 유기 사건에서도 숨진 영아들의 부모를 밝혀낸 핵심 열쇠는 DNA였다. 용의자의 물품에 남아 있던 유전자 정보가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 땀 한 방울의 과학=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박기원(45) 유전자연구실장은 8일 "범죄자들이 갈수록 영악해져 범죄 현장에서 지문 채취는 힘들어지고 있지만 극소량일지라도 유전자 정보는 남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다.

유전자 감식 기술은 최근 발전을 거듭해 100만분의 1mg의 샘플만으로도 범인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박 실장의 설명이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증거 인멸이 그만큼 어렵다. 지문에 붙은 땀 한 방울만 있어도 DNA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한면수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장은 "기본적으로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에서 유전자 샘플을 채취할 수 있다"며 "앞으로의 과학은 누구와 악수했는지도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극소량의 DNA 정보만으로 범인을 밝혀낸 사례는 많다. 2004년 울산에서 해결된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교 교사 김모(40)씨는 여대생 최모(21)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의 차에서 최씨의 혈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범행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경찰은 최씨를 묶었던 노끈에서 김씨의 땀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해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한 끝에 노끈에서 김씨의 DNA가 검출돼 범행을 자백받을 수 있었다.

◆ "세계적 수준의 DNA 수사"=현재 국과수의 유전자 분석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국과수는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 당시 미 국방부 DNA 분석센터와 공동으로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인 끝에 미국팀보다 20~30% 많은 결과물을 냈다. 2005년 쓰나미 때도 신속한 신원 확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안에 따르면 강도.강간.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유전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하는 유전자정보은행이 내년 상반기 설립될 전망이다.

한 과장은 "강력범죄 해결뿐 아니라 범죄의 예방에도 유전자 감식이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정보은행은 95년 영국을 시작으로 98년 미국, 2004년까지 세계 76개국이 도입했다. 하지만 "수사에 있어 DNA 감식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샘플이 오염될 경우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는 등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DNA 정보는 여러 증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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