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김재우를 감동시킨 선물 '아이디어 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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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런 동생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형님이 요즘 통닭이 너무 작다고 불평하면 동물원 타조를 잡아 튀겨 오고, 설악산 갔었을 때 기념품 하나 갖고 싶다 하면 흔들바위를 밀어서라도 가져다주는 우리의 힘 세고 엉뚱한 동생 길용이. SBS 웃찾사의 '형님뉴스' 속 길용이는 언제나 골칫덩어리 사고뭉치지만, 형님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면 때론 가슴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길용이를 연기하는 개그맨 김재우에겐 감동으로 뭉클한 선물이 있을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있죠. 작은 노트와 펜 한 자루인데요. 제가 평생 보물로 삼을 소중한 선물입니다."

2003년 '병아리 유치원'이란 코너로 방송에 첫 데뷔를 한 김재우는 분홍 원피스에 노란 책가방, 여기에 머리에는 깜찍한 머리핀까지 꽂은 유치원생 역할을 맡았다. 당시 그의 건장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유치원복 차림만 보고도 사람들은 크게 웃어주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절대로 웃지 않았다고 하는데.

"바로 저희 아버지요. 제가 방송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나오는 것을 너무 수치스러워 하셨어요. 개그맨 하지 말라고 정말 도시락 싸서 쫓아다니며 엄청나게 말리셨는데 그때 아버지께 매도 많이 맞았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까 나중에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도 하셨어요."

보수적이신 아버지는 박사학위를 딴 형과, 일본 유학을 하는 누나의 뒤를 이어 재우도 공부를 하길 간절히 원하셨다. 그런데 공부는커녕 학업도 다 마치기 전 열일 제쳐놓고 개그맨이 되겠다 고집을 부리니 그런 재우가 아버지 눈에는 가시였던 것.

"꼬박 3년을 투쟁했어요. 그러고 진지하게 말씀드렸죠. 그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2005년 겨울 어느 밤. 최고의 개그맨을 꿈꾸며 잠들어 있는 재우의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온 아버지는 그의 머리맡에 노트 한 권과 펜을 조용히 두고 가셨다.

"드디어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신 거죠. 그날 이후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노트에 개그 아이디어를 빼곡이 적어나갔어요. 지금 나몰라 패밀리, 형님뉴스의 길용이 모두 그 노트에서 탄생한 캐릭터랍니다."

그후 엄하고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하루 대여섯 번씩 안부 전화를 직접 하는 것은 물론, 개그도 인생도 배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책도 사서 보내주신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매주 재우는 선물을 준비한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순도 100%의 김재우표 웃음을.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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