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끝 빛 보인다"…비행기 조종석 435일 지킨 쪽지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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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항공 조종사인 크리스 데니스가 지난해 3월 23일 델타항공 여객기에 남긴 쪽지. 해당 여객기가 435일 만에 비행을 준비하며 발견됐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델타항공 조종사인 크리스 데니스가 지난해 3월 23일 델타항공 여객기에 남긴 쪽지. 해당 여객기가 435일 만에 비행을 준비하며 발견됐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당신이 이 쪽지를 발견했다는 건 아마 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는 뜻일 거다. 안전한 비행이 되길 바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23일. 미국 델타항공 3009편 조종사 크리스 데니스는 쪽지 한장을 조종석에 남겼다. 코로나19로 2주간 운항을 멈추게 된 여객기를 보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빅터빌 항공기지로 몰고 온 뒤였다. 모든 게 불확실하던 때, 다시 여객기를 운항할 조종사를 위해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였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쪽지가 발견된 건 그로부터 435일 뒤였다. 코로나19로 묶였던 하늘길이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다. 델타 항공은 최근 3009편의 운항을 준비하면서 이를 발견했고,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해 3월 하늘길이 막히면서 캘리포니아 빅터빌 공항의 항공기지에 수많은 델타항공 여객기가 세워져 있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지난해 3월 하늘길이 막히면서 캘리포니아 빅터빌 공항의 항공기지에 수많은 델타항공 여객기가 세워져 있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조종사 여러분, 오늘은 3월 23일이고 나는 방금 막 도착했다. 여기 사막에 수많은 우리 비행기가 나란히 있는 걸 보니 정말 으스스하다. 당신이 이 쪽지를 발견했다는 건 아마 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는 뜻일 거다. 얼마나 빨리 세상이 변했을지 놀랍다. 안전한 비행이 되길 바란다.”

델타 항공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57개의 단어는 2020년 3월에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불확실성을 보여준다”면서 “이제 3009편은 다시 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23일 캘리포니아주 빅터빌 공항의 항공 기지에서 '셀카'를 찍은 크리스 데니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지난해 3월 23일 캘리포니아주 빅터빌 공항의 항공 기지에서 '셀카'를 찍은 크리스 데니스. ['크리스 데니스' 페이스북]

쪽지의 주인공인 데니스는 지난 4일 델타항공 사외보에 “수많은 항공기가 한 곳에 나란히 모여있는 장면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면서 “비행기 하나에 조종사부터 정비사까지 얼마나 많은 직업이 달려있는지도 생각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때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래 갈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델타항공은 데니스가 남긴 이 쪽지의 사진을 ‘코로나 타임캡슐’로 회사 박물관에 보관하겠다고 밝혔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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