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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공간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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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간의 미래

공간의 미래

침대는 공간적으로 하루 8시간만 사용하지만 자리는 24시간 차지하는 장치다. 침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평당 2천만 원짜리 집에 산다면 침대 하나당 4천만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유현준 『공간의 미래』

침대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주거 개념이 서구화되면서, 우리의 집은 점점 더 좁아졌다. 그때그때 펴고 개는 요나 밥상 대신 침대와 식탁을 쓰게 되면서 방이 좁아졌다. 식구들이 모여 TV를 보는 소파도 필수품이 됐다. 방 하나가 여러 기능을 하던 데서, 침실·거실 등 다수의 독립적 공간들이 필요해졌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처럼 날로 좁아지는 집을 넓게 쓰려는 궁여지책으로 ‘발코니 확장법’을 택했다. 서비스 면적인 발코니를 확장해서 공식 면적은 유지하며 집을 넓히는 ‘편법’이 지금도 유행 중이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 얻은 공간이 있었기에 물건을 더 살 수 있게 됐다. 발코니 확장은 우리나라의 소비를 확대시켰고 결과적으로 제조업을 활성화시킨 ‘공간적 촉매제’가 되었다. 소유할 제품이 늘어나면 소유한 실내 공간의 크기를 키워야 하고, 공간의 크기를 키우면 다시 소유물을 늘이는 순환 고리가 된다.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공간과 물건을 키우고 늘리기 위해서 피곤하게 살아왔다.”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글쓰기로 유명한 건축가 유현준의 책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이 악순환을 깰 하나의 변수라고 기대한다. 부제가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