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완치 암 환자의 공통점은 평정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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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주인공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존 케리 상원의원이다. 그는 2003년 2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주치의는 "향후 9년 이내 암이 재발할 확률은 3% 이하"며 "설령 재발해도 대통령직 수행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암 환자가 장관이나 국왕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역시 정답은 '그렇다'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003년 12월에, 아키히토 일왕이 2003년 1월에 각각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둘 다 완치돼 국정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울대 의대 고창순 명예교수는 세 가지 암을 한꺼번에 이겨내기도 했다. 1957년엔 대장암으로, 82년엔 십이지장암으로, 97년엔 인근 장기로 전이된 간암으로 모두 세 차례나 개복수술을 해야 했다. 그는 올해 72세를 맞이했지만 암환자였다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암'하면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도 떠오른다. 97년 그는 직경 14㎝의 간암을 수술로 잘라냈으나 2개월 만에 폐로 전이됐다. 생존 가능성은 길어야 6개월. 그러나 그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뜬히 생존해 있다. 한국암환자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규씨는 98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개원 의사였던 김씨는 수술받자마자 의업을 접고 바로 지리산 인근 농가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3년간 칩거생활을 했다. 김씨는 현재까지 내시경상 재발되지 않아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암은 무조건 죽는 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 보듯 거뜬히 완치된 암환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기자는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조기발견이다. 케리도 그렇고 파월이나 아키히토 일왕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조기에 발견하면 대부분의 암은 완치할 수 있다. 검진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조기발견에 실패한 경우라면 '암세포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중기 이후 진행된 암의 예후엔 운도 많이 작용한다. 가톨릭의대 종양내과 홍영선 교수는 "똑같은 4기 폐암인데도 어떤 사람은 5,6년을 생존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3개월 만에 숨진다"며 "암세포도 독성이 각양각색"이라고 말했다. 현미경에 보이는 암세포의 모양은 똑같지만 독성은 암세포마다 다르며 현재 기술론 이를 미리 알아낼 수 없다. 같은 부위, 같은 병기의 암이라도 운좋게 독성이 약한 암세포를 지닌 환자의 예후는 좋다. 그러나 독성이 강한 암세포라면 예후가 나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최선은 평정심의 유지다. 치료를 포기하란 뜻이 아니다. 암세포를 무조건 몸 밖으로 몰아내려는 지나친 투쟁심의 고취는 부신을 자극해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다분비케하며 이것은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암세포를 자극한다. 비록 몸 안에 암세포가 있지만 달래가며 5년 이상 같이 지내자는 것이다.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은 심지어'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라'고 충고한다. 근거가 빈약한 공격적인 치료보다 때론 섭생 관리와 평정심 유지가 주효할 수 있다. 항암제나 수술 등 현대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는 중기 이후 암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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