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억불정책은 유례없는 인권탄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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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사의 대표적 이념 갈등, 또 그에 따른 폐해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 정동주(사진)씨가 펴낸 '부처, 통곡하다'를 보면 조선 시대의 불교 탄압이 1순위에 오를 것 같다. 해방 이후 줄곧 한국사회를 멍들게 한 이데올로기 대립보다 오히려 심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때론 약자(불교)에 대한 강자(유교)의 일방적 횡포처럼 비친다.

조선 왕조가 억불정책을 편 건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연구는 충분치 못했다.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논개', 대하소설 '백정''만적' 등을 냈던 정씨가 '조선왕조실록'을 꼼꼼이 읽으며 그 탄압 사례를 정리했다. 저자가 역사학자.불교학자가 아닌 작가인 까닭에 전문 연구서라기보다 고급 교양서에 가깝지만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또 다른 학문과 종교를 차별했던 성리학의 한계를 들춰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씨는 "로마시대나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노예제도보다 (불교탄압)이 더 잔혹하게 더 오랜 기간 행해졌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권 유린이었다는 것이다.

책에 제시된 사례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승려 대부분은 종이 부역을 맡아 1년 내내 종이 만드는 일에 매달렸고, 산성이나 궁궐 축조 등 숱한 토목공사에 강제 동원됐다. 전국 사찰에 떨어진 부역만 2백 종류나 됐다고 한다. 유생들은 예사로 불탑과 비석을 동강냈으며, 사찰을 빼앗아 개인 독서당으로 삼았다. 심지어 사찰의 목재를 헐어서 사랑채를 짓고, 절터에 조상의 무덤을 옮겼다. 연산군은 수행 중인 여승을 선발해 기생 노릇을 강요하기도 했다.

저자는 성리학의 닫힌 구조를 꼬집는다. 자신과 다른 세계와 가치를 부인했던, 즉 다양성과 창조성을 키우지 않았던 성리학의 한계와 조선 정치의 폐단을 성토하고 있는 것. 아직도 잔존하는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는 불교 탄압의 역사와도 맞아 떨어진다. 유교 측의 반론도 만만찮겠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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