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고맙지만 친해지긴 좀…" 中 보는 동남아 복잡한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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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이 나라 덕분에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데 ... 가까이하기는 싫다.'

중국 백신 [신화=연합뉴스]

중국 백신 [신화=연합뉴스]

요즘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속내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최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나라들이 '중국이 전염병 대처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지만,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외려 안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가 최근 동남아시아 10개국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른 것이다.

중국이 '백신 외교'로 가장 공을 들여온 곳이 바로 동남아시아다. 그런데 이곳에서 왜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것일까.

중국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인도네시아 [신화=연합뉴스]

중국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인도네시아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지난해 8월부터 동남아 국가들에 백신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밝혀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고 있던 나라들에선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중국이 '백신 외교'에 더욱 열을 올리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중국이 백신을 통해 뭔가를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불신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응답자 대다수가 "중국이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국"이라 인정하면서도 70% 이상이 "이를 우려한다"고 대답한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래서일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 놓였을 때 "중국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한 이는 38.5%에 불과했다. 지난해(46.4%)에 비해 훨씬 낮아진 수치다.

실제 캄보디아에선 훈센 총리가 시노팜 백신을 들여오며 크게 홍보를 했지만 일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한 중국 백신 [신화=연합뉴스]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한 중국 백신 [신화=연합뉴스]

그러나 아직 '중국 백신 외교'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더 디플로맷은 "중국 정부는 인도주의적 성격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며 "어찌 됐든 코로나19 퇴치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선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는다.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외려 백신 외교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인도네시아 [신화=연합뉴스]

중국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인도네시아 [신화=연합뉴스]

지난 1월 왕이 외교부장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차례로 방문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중동과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 시노백, 시노팜 등 자국 백신으로 이들 나라를 지원하는 방안과 더불어 일대일로 관련 논의도 하기 위해서다.

중국만이 '백신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최근 유엔 안보리 화상회의에서 "부국들이 백신을 차지하는 사이 가난한 나라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 백신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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