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수술 노하우 베트남에 전수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처음으로 베트남을 찾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병상 하나에 아이 서넛이 함께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죠.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앞에서 가슴이 턱 메여왔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이흥재(58) 교수가 이끄는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의 선천성심장팀 의사들은 연월차 휴가를 베트남국립아동병원의 수술실에서 보내고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 때 다섯명에게 이 병원 사상 첫 심장병 수술을 시행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총 19명의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특히 지난 15일엔 심장병의 정확한 진단과 시술에 꼭 필요한 혈관조영실을 열고, 현지 의사들과 함께 동맥관개존증(폐동맥과 대동맥 사이에 구멍이 뚫려 닫히지 않는 병)을 앓고 있는 다섯살배기 소년에게 최초의 시술을 했다.

"선천성 심장기형 환자의 20% 쯤은 수술 대신에 내과적인 시술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혈관조영실을 열기 위해 지난달 베트남 의사들을 서울로 불러 연수를 시키는 등 철저히 준비해왔어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 위치한 국립아동병원은 800개의 병상을 갖춘 베트남 북부지역 최대의 어린이 전문병원이다.

이 병원은 베트남 어린이에게 만연한 선천성 심장병을 퇴치하라는 정부의 지시 하에 몇년 전부터 최신 의료설비를 갖추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정작 심장병 수술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 삼성서울병원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고한월(당시 5개월)군이 두 병원간 인연의 고리가 됐어요. 베트남국립아동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판정을 받은 고군의 부모가 수소문 끝에 지난해 7월 우리 병원으로 찾아왔죠. 진단해보니 대동맥축착(심장에서 나가는 동맥이 오그라드는 병)이 심해 심장이 제대로 뛰지않는 상태라 곧장 수술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트남국립아동병원의 응웬 타인 리엠 원장이 이 교수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두 병원의 협력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국도 1980년대에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게서 물질적.기술적 지원을 받아 현재의 심장병 치료 시스템을 갖추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돌려줄 차례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