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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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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이솝 우화의 인기에 비해 이솝의 인지도는 초라할 정도다.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살았던 그리스인이란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솝에 대해 알려진 건 적지만 인간 본성과 심리를 꿰뚫어 본 통찰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포도와 여우의 우화가 대표적이다. 굶주렸던 여우는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를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한다. 발걸음을 돌리며 여우가 하는 말. “저건 분명 신포도 일 거야.”

미국 행동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1919~1989)는 이 우화에 주목한다. 알고 있던 지식과 현실이 다를 때 인간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게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이다. 페스팅거가 초점을 맞춘 건 인지가 아닌 부조화였다. 최종 면접에서 낙방하고 회사를 나서면서 “조만간 망할 회사니 차라리 잘됐다”며 혼잣말을 내뱉는 게 대표적인 인지부조화다. 충만했던 자신감과 불합격이란 현실이 만나는 순간 심리적 부조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확인한 페스팅거는 생각의 방향과 경험·의견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부조화를 해소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봤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탄생한 거대한 심리 실험실은 인지부조화 이론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20번 넘게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먹히지 않자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전형적인 현실 부정이다. 법무부 장관 사례도 딱 들어맞는다.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 집행 문제를 지적하다 법무부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입을 닫았다. 국정을 총괄하는 문 대통령도 이런 쟁점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부조화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회피다. 인지부조화 관점에서 보면 내로남불은 부조화 증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특효약이다. 자신에게만 느슨한 잣대를 들이댄다.

페스팅거는 부조화에 노출된 기간이 길수록 이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다고 주장한다. 집단이 부조화 상황에 놓여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부조화에서 벗어나려는 건 식욕 해소와 같은 기본적인 행동 방식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인지부조화 이론이 주는 교훈은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게 검은색과 백색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