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흡연자

중앙일보

입력

서구 사회는 물론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어디에도 흡연자는 남아 있지 않다. '담배 후진국'으로 멸시받던 일본에서도 비로소 흡연 추방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신문.잡지에서 제법 논쟁을 벌이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엔가 흡연을 옹호하는 논조가 자취를 감추었다.

급기야 담배 가게들이 문닫기 시작하고, 남아 있던 가게들은 밤중에 금연운동가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공원마다 '개와 흡연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나붙었다.

흡연자가 대낮 길거리에서 행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얼마 안남은 흡연자들은 금연운동가들이 집에 쳐들어오면 총격전까지 벌이며 버텼지만 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결국 '최후의 골초' 20여명이 일본 각지에서 연락을 취해 도쿄(東京)의 한 아파트에 모여들었다.

그로부터 1주일 간 군대(자위대).경찰.금연운동가들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지만 골초 대부분은 전사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명이 아파트를 탈출, 밤중에 일본 국회의사당의 지붕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마지막 담배를 피워가며 처절하게 저항한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일본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筒井康隆)의 소설 '최후의 흡연자'의 줄거리를 엽기와 유머가 섞인 공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한국도 흡연 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으니까. 길거리 흡연 규제법안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됐고, KBS는 이달 들어 모든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없앴다. 오는 9일부터는 SBS 드라마에서도 담배가 사라진다.

노르웨이에서는 세계 최초로 2004년부터 모든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다. 일본의 관광도시 닛코(日光)에선 길거리 흡연이 곧 금지될 전망이다. 호주의 한 골초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마라"는 법원 판결을 받아 망신살이 뻗쳤다.

어김없이 돌아온 세모(歲暮). 망년회 자리에서 비흡연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담배를 꺼내드는 와중에도 연초의 서릿발 같았던 금연 결심을 한번쯤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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