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벼락치기' 인하 혼란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인하하면서 준비 기간을 거의 주지 않고 시행하기로 해 환자들이 인하조치의 덕을 보지 못하는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올 상반기에 약품 도매상.제약회사.의료기관.약국 등을 대상으로 약품 거래가격을 조사한 결과 건강보험 가격보다 낮게 거래된 7백76개 약의 가격을 평균 9.1% 내리기로 했다. 복지부는이를 다음달 1일부터 적용한다고 2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약국들은 다음달 1일 전까지 약값 계산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해 프로그램 변경 작업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값은 내렸는 데도 환자들이 종전 가격대로 약을 조제하는 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약값과 조제료를 더한 약제비가 1만원 이하인 환자는 지금처럼 1천5백원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약제비가 1만원이 넘는 환자는 상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이번에 염증치료제 파마염산시프로플록사신정은 1천16원에서 3백46원으로 내렸다. 이 약이 든 처방전(사흘치)을 받은 환자의 약제비가 1만4천원이라고 가정하면 인하된 가격대로라면 1천5백원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약값 계산 프로그램이 바뀌지 않은 약국에선 4천6백원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조치로 인해 종전 가격대로 약을 구입한 약국들이 재고 약품의 가격을 놓고 도매상.제약회사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약사회는 "가격이 달라진 약이 7백개가 넘고 일일이 찾아 약값을 수작업으로 계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종전 가격대로 약값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건보재정 절감도 중요하지만 준비기간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횡포"라고 말했다.

약사회 신현창 사무총장은 "지난달 초 복지부가 약가 인하 보름 전에 고시하기로 약속해 놓고 한달여 만에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약사회가 서둘러 프로그램을 변경하면 7월 초에만 혼란이 따를 것"이라면서 "이 기간에도 약국들이 수작업으로 환자 본인부담금을 계산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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