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권 비리가 부패지수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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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사회의 부패 정도를 보여주는 부패인식지수가 세계 1백33개국 중 50위로, 지난해보다 10단계나 곤두박질쳤다는 국제투명성기구(IT)의 발표에 낯이 뜨겁다. 명색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인 나라가 공직자의 뇌물수수와 부패 정도, 외국 업체들의 기업 환경 등에서 중동이나 중남미 국가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외면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조금씩 나아지는 듯싶던 부패 정도가 다시 심화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현대.SK 비자금, 그리고 그 배후에 자리잡은 정경유착과 부패의 그림자가 최근 잇따라 드러나면서 국제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관료 사회, 그리고 기업은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한국이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듣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설 때마다 앞세운 개혁과 부패 척결의 구호가 허구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도 수백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SK그룹 비자금 사건에 청와대 실세들의 연루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목을 옥죄는 숱한 규제도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창업에 수십 단계를 거쳐야 하는 현실하에서는 공직자의 부패가 줄기 어렵다.

부패는 그 나라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지 않고서는 한국의 국제적 신인도 제고는 물론 경제 회복도 어렵다. 이래서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없고,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도 난망하다.

정치권부터 각성해야 한다. 청와대 실세나 정치권 등 소위 힘있는 사람들부터 부패 척결과 도덕성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부정과 부패에 대해 보다 엄격한 감시 기능이 마련돼야 하며 사법적 제재도 강화돼야 한다. 아울러 획기적인 규제 완화, 그리고 기업의 회계.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