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건강보험 진찰 결과]

중앙일보

입력

감사원 감사결과는 강도가 매우 높을뿐더러 현직 차관에게 인사 불이익 조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의약분업과 의보재정 파탄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아주 심각함을 감안해 징계수위를 대폭 상향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의약분업을 추진한 이경호 현 차관.S국장의 보건정책국 라인, 의보재정을 담당한 K국장.L과장.J과장의 연금보험국 라인 등 주요 인사들을 거의 모두 징계토록 복지부에 요구한 것이다.

◇ 재정추계 잘못=감사원은 의약분업이 초래할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정책을 결정한 점에 상당한 책임을 묻고 있다.

1999년 9월 실무진들이 2000년 1조7천여억원, 올해 2조5천억원 가량의 적자가 날 것이라고 당시 차흥봉 전 장관에게 보고했으나 車전장관이 이를 빼고 다시 의보재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상반기 국회 등에 재정대책을 보고할 때 이같은 적자추계를 뺀 채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진료수가를 조정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식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대책을 보고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에는 분업의 추가 소요 재정이 연간 1조5천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발표했고 그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분업을 하지 않더라도 발생하는 자연적인 적자를 지난해 8천여억원, 올해 1조3천여억원으로 축소보고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분업을 시행한 후 올해 1월까지 세차례 의보수가를 22.7% 인상해 사회문제가 되자 올해 3월에서야 분업 외 자연증가요인까지 감안해 올해 적자 규모를 4조여원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 국민 불편 야기=감사원은 분업 초기 약국의 처방약이 턱없이 부족해 국민 불편을 초래한 점과, 단골약국제를 실시해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 정책이 실패한 점을 지적했다.

또 분업을 하면 본인부담금 증가, 교통비 증가 등의 국민 불편이 발생하는데도 분업의 긍정적인 면만 홍보해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 감사의 한계=車전장관에 대한 조치가 빠진 점에 대해 한 복지부 과장은 "정치권 등을 제쳐놓고 복지부만 책임을 묻는 것도 억울한데 왜 아랫사람만 손을 대느냐" 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車전장관이 재정적자 규모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재정대책을 보고하거나 국민 불편 최소화 대책을 소홀히 한 것 등 직무태만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고발하지 않았다.

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강경식 전 부총리를 고발했다가 무죄 판결이 내려진 전례를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대신 의약분업 책임 선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1급에서 차관으로 승진시킨 李차관을 인사조치 대상에 넣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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