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에 대한 편견과 오해(1)

중앙일보

입력

최근 몇 년 동안 길거리를 걷다보면 xxx외과, 대장항문클리닉이라고 간판을 걸어놓은 병원들이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났다.

독특한 우리 나라의 의료환경 때문에 일반외과 개업의들이 자신의 영역인 수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지만 서구화된 식습관과 과거에 가졌던 항문은 부끄럽고 지저분한 곳이라는 선입관이 많이 누그러진 탓도 있다하겠다.

이렇듯 의사들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게된 항문질환이지만 그 동안에 항문을 바라보던 시각이 완전히 교정된 것은 아니라 병원을 찾거나 인터넷 상담을 하는 많은 분들이 아직도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치질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해 보고자한다.

◇ 항문이 불편하면 다 치질 때문이다?

치질(痔疾)은 한자 풀이대로 항문의 병을 말하는데, 과거부터 항문안과 항문주위의 혈관들이 커져 생기는 치핵을 치질이라고 해왔다.

현대의학에서는 항문에 생길 수 있는 모든 질환을 치질이라 하고 이러한 분류에 들어가는 질환은 치핵, 치루, 치열, 항문소양증, 항문 성병등 매우 다양하다.

항문질환이 이렇게 다양한 만큼 그 증상도 다양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일단 치질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항문 안에 넣어보고 그래도 잘 안되면 병원에 오는 형태로 항문 질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부끄러운 부분이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병이 다르면 원인도 다르고, 원인이 다른 것만큼 치료법도 차이가 있으므로 원인 파악이 되지 않은 치료법은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져도 근본적인 치료는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 항문이 아프면 다 치질이다?

예전부터 치질(실제로는 치핵)은 매우 아픈 병이라 소문이 났고, 수술 받은 후에도 매우 아프다고 알려져 이것이 수술을 꺼리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문이 아픈 경우 모두 다 치질(치핵)은 아니다.

평소에는 별 문제 없다가 갑자기 아픈 경우가 있는데, 이는 치핵을 만드는 혈관 안을 흐르던 피의 흐름이 멈추면서 혈전(피떡)을 만드는 혈전성 치핵이거나 비교적 큰 치핵이 배변 시에 항문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부어오르는 감돈성 치핵인 경우이다.

물론 통증이 심한 건 사실이지만 다행인 것은 증상이 있는 당시에 꼭 수술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배변 시에 항문입구가 찢어져 출혈과 통증이 생기는 치열이라는 병도 주로 젊은 층에서의 통증의 중요한 원인인데, 치핵과는 병이 생기는 원리가 다르므로 다른 방법의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다소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중의 하나가 항문이나 직장의 주변이 곪는 항문, 직장주위 농양인데, 이는 세균감염에 의해 생긴 고름이 빠지지 않는 한 좋아지지 않고, 심한 경우에는 전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빠른 시간 내에 배농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때에는 항문만 아픈 게 아니라 감기몸살에 걸린 듯이 몸에 열이 나는 경우도 있다.

◇ 항문 주위에 뭐가 만져지면 다 치질이다?

분만을 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임신중이나 분만직후에 치질(치핵)이 심해졌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분만 이후로 항문주위에 혹 같은 것이 생겨 계속 없어지지 않아 산부인과 진료 중에 치질이 꽤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많다.

환자 본인들도 자신의 치질이 심한줄 알고있는 분들이 꽤 되는데, 막상 항문 안을 들여다보면 상상외로 치핵이 별로 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 만져지는 부분은 치핵이라기 보다는 항문주위 피부가 늘어진 피부꼬리인데, 필자는 흔히 얼굴에 생긴 주름살과 비유하곤 한다.

이런 피부꼬리는 혈전성 치핵 때문에 치핵이 커질 때 함께 커졌던 피부부분이 탄력이 부족하여 줄어들지 못하고 늘어진 채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의 항문을 볼 기회가 아기들 기저귀 갈아줄 때뿐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기들처럼 팽팽하고 매끈한 항문이 정상적인 항문모양이라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젊을 때와 얼굴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항문 모양도 변해간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항문 주위가 매끈하지 않다는 사실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