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 의 소중함

중앙일보

입력

손가락 하나가 너무나 못생겼는데 잘라버리고 가짜 손가락을 끼우고 다니면 어떨까요?

저희 병원은 교정진료만을 하기에 일반치과치료를 받으러 오신 분은 가까운 치과로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몇 주전 60대의 노부부가 저희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셨습니다. 아마도 잇몸질환이나 틀니문제 때문에 오셨으리라 생각하고 가까운 치과로 소개해드리려고 하였는데 교정치료 때문에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래 앞니가 벌어져있는데 일반치과에 가셨더니 치아를 깎고 좀 크게 만들어 씌우면 일주일 내에 해결되리라는 상담을 받았노라고 하십니다. 상담실에 앉아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 교정치료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니 이를 해넣으시는 방법은 어떨까요? “ 하지만 본인은 내 치아를 깎는 것이 너무나 싫어 이 나이(?)에도 교정이 가능한지 문의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상담을 마치고 교정치료를 받으시기로 하시고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순이 넘으신 나이에 교정치료를 받으실 정도로 치아나 잇몸의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하시다니 관리를 참 잘하셨구나 하는 생각과 자기 치아를 저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시니 그것도 당연한 결과구나"


요즈음 들어 교정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치아를 빼버리거나 깎아서 가지런하게 만들면 어떻겠냐는 문의를 자주 받습니다. 특히 20대의 젊은이들이 그런 문의를 많이 하지요.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제대로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손가락 하나가 너무나 못생겼는데 잘라버리고 가짜 손가락을 끼우고 다니면 어떨까요? 라고 물으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부모님이 주신 내 치아만한 것은 없지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자기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결과는 오래 지속되며 그 결과 또한 만족스럽습니다. ‘빨리빨리’ 를 외치며 겉모양만 우선 만들려는 시도는 얼마지나지 않아 후회를 낳습니다.

예순이 넘으신 교정 환자분의 뒷모습에서 요즈음의 초스피드 문화에 대한 소리없는 질책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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