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성형미인

중앙일보

입력

'홍콩 누아르' 를 영화 장르로 자리매김한 홍콩 출신 할리우드 감독 존 우(吳宇森)가 1997년에 만든 영화가 '페이스 오프' 다.

청부 테러범 역을 맡은 니컬러스 케이지와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나오는 존 트래볼타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볼 만한 액션 영화다.

둘의 얼굴을 서로 바꿔칠 수밖에 없는 영화다운 상황이 설정되면서 성형외과 의료진은 수술을 통해 두 사람의 얼굴을 감쪽같이 맞바꾼다.

영화니까 가능한 얘기지만 성형외과술의 눈부신 발달로 누구나 돈이 있으면 치아 교정하듯 얼굴과 몸매를 고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얼마 전만 해도 미용성형이라면 쌍꺼풀을 만들고 코를 높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레이저 박피술.내시경 수술.지방흡입술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미용성형의 대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체 전체로 확대됐다.

인조뼈나 인조피부 같은 인체조직 대체물과 보형물의 급속한 발전도 성형수술의 발달에 한 몫을 했다.

그 결과 성형수술은 이마를 넓히고 주름을 펴고 눈썹에 뼈를 심고 광대뼈와 턱뼈를 깎고 주걱턱을 다듬고 입술과 가슴을 부풀리고 종아리 근육을 잘라내고 뱃살의 지방을 제거하는 데까지 왔다. 종류만 1백여가지에 이른다.

'외모도 경쟁력이다' 고 부추기는 세태에서 여성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경제적 부담과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투어 성형수술에 나서고 있다.

20대 여성의 80%가 "예뻐진다면 성형수술을 받겠다" 는 의견이라는 여론조사도 있다. 졸업에 맞춰 성형수술을 '선물' 하는 부모가 늘고 있고, 일부 주부들 사이에서는 성형수술계까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성형수술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신문이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열풍을 1면 기사로 다루는 웃지못할 일까지 생겼다.

엊그제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여성들이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눈을 크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미끈한 다리를 위해 위험한 종아리 근육 제거수술까지 받고 있다" 고 꼬집었다.

'성형미인' 이라고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는 연예인들도 있을 만큼 성형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느니 돈을 좀 들여 자신있게 살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게 아니냐고 주장하면 딱이 할 말도 없다. 성형수술 자체를 문제삼을 건 아닌 것 같다.

외모를 갖췄더라도 실력에서 우러나오는 당당함과 개성있는 자기연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짜 미인으로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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