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팡질팡 의약분업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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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함에 따라 약사회와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한약사회는 임의 조제와 낱알 판매에 나서는 등 의약분업 자체를 정면 거부하겠다는 태도여서 제2의 의료대란마저 우려되고 있다.

주사제의 의약분업 대상 제외 여부를 둘러싼 정책 혼선은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시행 직전인 지난해 6월 모든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불과 10여일만에 냉동 ·냉장 ·차광 등 주사제는 제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다 같은해 7월31일 약사법 개정안에선 다시 냉동 ·냉장 주사제만 예외로 인정하면서 차광 주사제도 2001년 3월부터 분업 대상에 포함시키로 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가 정부의 주사제 분업 제외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주사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와 국회의 일관성 없는 정책 ·입법 추진 행태가 어렵사리 진정된 의약분업에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환자들의 불편을 덜고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원외처방료 ·조제료가 없어져 환자의 경우 연간 1천1백여억원의 진료비를,의료보험 재정은 3천여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이미 분업에서 제외된 주사제가 사용 빈도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주사제의 85%를 차지해 주사제를 모두 제외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사제의 분업 대상 제외 조치엔 일부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그러나 병·의원과 약국을 오가야 하는 환자들의 번거러움을 덜어주려고 주사제를 제외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의약분업 실시 초기 정부는 주사제 오 ·남용을 줄여야 한다면서 불편이 있더라도 참아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의 주사제 처방률은 56%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17.2%)에 비해 턱없이 높다.이 법안이 확정된다면 남용을 부추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주사제 분업에 적응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뒤집는다면 혼란만 가중시킬뿐이다.

의약분업의 본래 취지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의약품 오 ·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따라서 주사제 문제도 이 원칙에서 다뤄져야 한다.'국민편의'만을 강조하거나 편의를 도외시한'국민건강'만을 주장해서도 안된다.또 이문제를 약사와 의사간의 밥그릇싸움으로 몰고가서도 안될 것이다.

국회 본회의 처리 절차가 남아 있으니 정부와 의·약계는 지난해 11월의 합의정신으로 돌아가 보다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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