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집단매춘' 입 다문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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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 언론의 특징 중 하나는 '집요함'이다. 사건이 터지면 물고 늘어진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일본인 납치를 공식으로 인정한 이래 일본 언론은 지금까지 이 문제를 꽉 문 채 놓지 않고 있다.

일본은 언론천국이다. 협회에 가입한 신문.방송.통신사만 1백53개사이고 잡지와 기타 신문도 부지기수다. 웬만한 사건에도 기자 수백명이 달려들기 때문에 '취재원 인권침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언론의 색깔도 진보.보수.중도 등 다채롭다. 지식인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나 제언을 제시한다.

이런 일본 언론이 유독 최근 중국에서 일본 회사원들이 저지른 '집단 매춘'사건에 대해선 매우 소극적이다. 일부 방송 말고 신문 등에서는 사건 발생 보도 이후 속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사건이 발생하자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서둘러 천명했지만 언론들은 이상하리만큼 나 몰라라 한다. 떠들썩한 사건의 경우 정부보다 언론이 먼저 나서 진상 파악에 몰두하던 상례가 이번엔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올 들어 몇차례 벌어진 극우단체의 조총련.외무성 간부 테러 협박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발생 보도 이외에는 추가 소식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한 일본 언론인은 "집단 매춘 의혹은 윤리적으론 문제가 크지만 일본법에는 위배되지 않았고, 뉴스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추적보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조총련계 인사는 "일본사회가 보수화되고 과거 영광을 재현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일본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보도는 가능한 한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중국 광둥(廣東)성 정부는 집단매춘이 사실이었다고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일본은 일제의 아시아 유린이라는 전과를 가지고 있다. '집단 매춘'사건은 이런 일본의 과거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지성은 이를 덮어만 둘 것인가.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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