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구하다 중상입은 김경빈 병원장

중앙일보

입력

"불이 나자마자 아버지는 제일 먼저 뛰어나가 환자들을 구하다 이런 변을 당했습니다. "

11일 새벽 발생한 서울 광진구 중곡동 정신병원 화재 현장에서 폐에 화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김경빈(金耕彬.48.사진) 원장의 아들 민재(21.대학생) 씨는 12일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金씨에 따르면 화재 당시 병원 1층 사저에 있던 金원장은 불이 난 사실을 알고 잠옷 바람으로 뛰어내려가 입원실이 있는 지하 1층 문을 열었다.

이어 지상 2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환자들을 대피시키다 15분 만에 金원장 자신이 연기에 질식돼 구급대원에 의해 실려나왔다는 것이다.

경희대 의대를 졸업, 국립정신병원 신경정신과장을 지낸 뒤 1994년 이 병원을 차린 金원장은 어려운 환자에게는 병원비를 받지 않아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의사로 존경받았다.

알콜 중독으로 이 병원에서 치료 중인 李모(24.여) 씨는 "병원비가 모자라 고민을 호소하자 金원장께서 ´사람 살리는 게 급하다´ 며 병원비를 깎아줬다" 며 "사리사욕없는 진정한 의사" 라고 칭찬했다.

金원장에게 치료받았던 병원 퇴원환자 서너명은 이날 金원장이 입원한 서울 민중병원에 찾아와 그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일찍부터 마약.알콜 중독자에게 관심을 가졌던 金원장은 88년 약물상담가협회를 만들어 무료상담 활동을 해왔으며 국내 최초로 마약.알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 약물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3년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알콜 치료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의 마약 치료를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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