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댓]왜란 후 망가진 조선·일본 무역 재개시킨 대마도의 ‘새빨간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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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피터지게 싸운 조선과 일본은 전쟁 후 어떻게 국교를 재개했을까’

당시 기록에 따르면 두 나라 교류 재개에는 대마도의 ‘거짓말’ 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교역을 재개할지 말지 주저하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대마도는 양국 국서를 서로의 입맛에 맞게 바꿔서 전달했습니다. 왜란 당시 조선 왕릉을 훼손한 범인을 데려오라는 조선의 요구에도 ‘가짜’ 범인을 만들어 보냅니다.

대마도는 왜 이렇게까지 ‘간 큰’ 거짓말을 했을까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토지가 척박한 대마도는 경제적으로 조선과의 무역에 의지했는데, 전쟁으로 모든 게 망가졌죠. 파탄 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기를 쓰고 양국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지요.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며 조선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대마도의 위험한 도박은 성공합니다. 1609년 조선과 일본은 기유약조를 맺고 국교를 재개합니다. 대마도가 경제적 혜택을 누린 조선과의 무역 독점도 성사됐습니다. 약 30년 뒤 대마도가 모든 일을 꾸몄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조선과 일본은 기껏 되살린 관계를 망칠 필요가 없다며 없던 일로 묻어둡니다.

왜란 이후 경제적 곤란을 겪었던 대마도를 살펴보면 얼어붙은 한ㆍ일 관계 탓에 한국 수출길이 막힌 일본수출기업들이 오버랩되지요. 한국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 관광길이 막혀 여행ㆍ저가항공업체들이 타격을 입었고,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기 어려워져 곤란을 겪었습니다.

교류가 끊기면 경제적 피해도 생기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적 긴장감도 높아졌습니다. 조선통신사가 양국을 오고갔던 1600년~1800년대까지 약 200년간은 동아시아 정세는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811년을 마지막으로 조선통신사의 발길이 끊긴 뒤 조선은 일본 내부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짚지 못했습니다.

한ㆍ일 간 정치·경제적 교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꽉 막힌 지금의 한ㆍ일 관계를 풀어 줄 2020년 식 ‘대마도의 거짓말’은 무엇일까요. 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유성운·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강인혜·권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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