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집단폭행 사망' 징역 12년 구형…피해자 父 “아이 원혼 달래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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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클럽에서 시비가 붙은 끝에 20대 남성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태권도 유단자들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들 모두가 살인 혐의의 공범이라며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 열린 마지막 공판에는 사망한 피해자의 아버지가 나와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하며 울먹였다.

“테이프 붙여 아이 눈 감겨” 울먹

26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부장 박상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 나온 피해자 A씨의 아버지는 “저는 아직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장례식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이 술 한잔 따라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시작했다. 이어 “재판에서 아이의 원한을 달래주고 술을 따라주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며 “법의 지엄함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이날 A씨의 아버지는 A4용지 두 장에 달하는 진술 내용을 들고 법정에 섰지만 준비해놓은 종이를 거의 보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아이는 응급실에서 얼마나 원통했던지 눈을 감지 않았다. 결국 간호사가 테이프를 붙여서 눈을 감겼다”며 “피고인들을 추호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지만 혹시나 재판에서 소리를 지르면 불리할까 봐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울먹였다. 방청석에서 이를 보던 A씨의 어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의 부모들이 A씨의 아버지에게 사과했다. A씨의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떠나지 않자 A씨 아버지는 “죄송하다는 사람이 이제 찾아오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A씨 어머니는 오열하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을 수 있다는 것 알았나’ 쟁점

A씨를 폭행한 김씨(21)·이씨(21)·오씨(21)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가 재판 내내 주요 쟁점이 됐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행위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재판에 넘겨진 세 사람은 “폭행으로 인해 A씨가 사망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상해치사는 인정할 수 있지만 살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 등 세 명은 모두 태권도 4단의 유단자다.

검찰 “발차기로 피해자 꿈 짓밟혔다”

검찰은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일방적으로 주먹과 발 등으로 폭행을 당했다”며 “폭행 시작 40초도 되지 않았음에도 A씨가 의식을 잃고 그대로 사망한 것을 볼 때 급소를 집중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주먹질과 발차기로 A씨는 앞으로 살아갈 날과 꿈이 짓밟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같은 점을 들어 김씨 등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연합뉴스]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연합뉴스]

유단자들 “살인 고의 없었다”

한편 김씨 등 3명은 이날 각각 증인석에 나와 신문을 받았다. 김씨는 “무의식적으로 발로 찼을 뿐 태권도 발차기처럼 찬 것은 아니다”며 “살인의 고의는 없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상가 안에서 A씨를 때리지 않았다”며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김씨와 오씨가 때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해 말릴 수도 없었다”고 했다.

오씨는 최후진술에서 “구치소에서 지내면서 너무 죄송해서 죽고 싶었다. 주시는 벌 달게 받겠다”고 울먹였다. 오씨의 변호사는 “불상사로 인해 한 명은 다시 볼 수 없고 나머지 3명은 구속됐다. 이 사건에는 피해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살인 고의가 생길 만한 시간이 없었고, 폭행 시간도 짧아 살인은 무죄를 주장한다”고 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 오전 이씨는 서울 광진구의 한 클럽에서 A씨의 여자친구를 건드렸다가 A씨와 시비가 붙었다. 이후 밖으로 나온 이씨는 A씨의 멱살을 잡고 다리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이후 이씨 등 3명과 A씨는 CC(폐쇄회로)TV가 없는 상가 안으로 들어갔고, A씨는 이 안에서 수차례 맞아 사망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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