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재폐업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의약분업 전면 실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상적으로 굴러갈지 매우 불투명하다.

의료계는 오는 31일 또는 8월 1일 재폐업하거나 불복종 운동의 일환으로 분업에 불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의료계가 지난 25일 의협 상임이사회의 폐업 유보방침을 며칠 만에 뒤집은 이유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먹혔기 때문이다.

의사협회 상임이사들과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중앙위원들의 상당수는 ´폐업〓의료계 공멸´ 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약사법 개정이 물건너갔고, 의료제도 개혁 요구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의약분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가을 정기국회를 겨냥해 다시 한번 투쟁의 깃발을 올리거나 의료계의 뜻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강경파와 일선 회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기명식 찬반투표라는 묘한 방식을 만들어냈다. 폐업하고 싶으면 본인의 이름을 쓰고 사법처리등의 책임도 지라는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고 했다. 의쟁투 관계자도 "폐업하면 망한다. 완벽히 깨질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고 고충을 털어놨다.

강경파 회원들은 약사법 개정안이 의사의 진료권을 확보하지 못해 개악되는 등 의사 노릇을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아예 문을 닫고 감방에 들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폐업하더라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거나 오래지 않아 끝날 가능성이 크다.

폐업하지 않으면서 의약분업에 불참하기도 쉽지 않다.

의약분업에 반대하면 원내 조제를 해야 하지만 약값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다가는 항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의료보험 청구도 못한다. 고스란히 병원과 의사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지만 이런 경제적 손실을 얼마나 버텨낼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폐업을 포기하고 의약분업에 적극적으로 들어오지도 않을 듯하다. 이래저래 의약분업은 뒤뚱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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