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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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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엄마, 어린이날 선물 사러 지금 토이○○○ 가요!”

5일 이른 아침부터 아이는 신이 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날=선물 받는 날’이다. 두 달 전부터 어린이날 선물을 뭐로 받을지 50번은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이제 7살 형님이라 어린이날 선물을 안 받겠다’고 선언한 게 일주일 전인데, 며칠 만에 장난감 가게에서 눈여겨본 로봇을 사달라며 노래 부른다.

장난감 가게 안은 북적북적했다. 아이는 찜해둔 로봇을 냉큼 집더니 꼭 껴안는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이다. 어떤 장난감을 고를까 고민하는 다른 아이들 역시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장난감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장난감 박스 개봉과 함께 터져 나오는 순간. 문득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 그 어떤 걱정 없이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하다. 2만4000원짜리 장난감이 주는 만족감이 대단하다.

어린이날이 지난 5월. 이제 어른들의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전 국민에 지급 예정인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이다. 둘, 셋만 모여도 ‘재난지원금을 받으면 뭐에 쓸까’를 궁리하며 사용처 정보를 공유한다. 미용실에 가겠다, 피부과 시술을 받겠다, 쇠고기를 사 먹겠다…. 다들 들뜨고 신난 분위기다.

하긴 나라에서 ‘공돈’을 주는 일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8월 31일까지 쓰지 않은 잔액은 사라진다. 한 푼도 남기지 않고 ‘탕진잼’을 누리려면 사용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는 그 자체가 큰 재미다.

마치 온 국민이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선물을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하다. 선물 앞에서 설레는 건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국민들이 신나게 펑펑 써준다면 그것이 바로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취지를 충분히 살리는 길이다. 이런 들썩거리는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한가지 걱정이 든다. 지금 분위기로 봤을 때 선물효과가 워낙 강력해서 자칫 중독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다. 국민들의 중독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렇게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니’라며 돈 뿌리기에 중독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