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울어버린 여기자의 암투병

중앙일보

입력

2년간 암과 싸워온 이야기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한 여기자가 14일 끝내 숨을 거뒀다.
죽는 날까지 기자이기를, 또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캐시 헤이너(1961~99) 의 죽음에 미 국민이 다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녀의 투병기는 지난해 1월 처음 유방암 선고를 받던 날 함께 병원에 간 약혼자에게 던진 유머섞인 항변으로 시작됐다.

"의사가 미쳤나봐. 막 사랑에 빠진 서른여섯의 노처녀에게 암이라니 말도 안돼. "
그녀가 몸담았던 USA투데이지는 암판정 후에도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그녀의 고집에 사연많은 투병기 시리즈를 게재했다.

8일자까지 12회에 걸친 투병기가 연재되면서 독자들은 때로 불치의 병에 직면한 인간의 절망감에, 삶의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용기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다.

헤이너는 자신이 암환자란 현실을 인정한 다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암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나는 암이란 말과 그것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널리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도움과 영감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 이라고 썼다.

치료가 진행되고 병세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그녀는 이 목표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투병기에 암의 원인.증상, 내면의 고통과 심경의 변화 등을 꼼꼼하게 적어내려갔다.

한 동료 기자는 추모사에서 "헤이너는 치료과정에서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하자 스스로 머리를 박박 밀어낼 정도로 강인한 성격" 이었다면서 "그녀의 박박 민 머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고 회고했다.

헤이너의 투병기는 남을 취재해 쓴 기사가 아니라 자신을 상대로 쓴 글이었기에 큰 호소력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투병기가 연재되자 수천통의 편지와 E메일이 쇄도했다.
처음엔 투병을 격려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용기에 감동하고, 그녀가 깨우쳐준 삶의 의미에 감사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한 독자는 "캐시의 글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병세가 악화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계속 읽기를 주저했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캐시가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 줬다" 며 "그녀는 암과의 싸움에서 진 게 아니라 삶의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 고 말했다.

헤이너는 마지막회에 죽음을 예감한 듯 죽음을 배의 항해로 비유한 우화를 소개했다.

"먼 바다로 나서는 배는 이 쪽에서 보면 점점 멀어지지만 바다 저쪽에서 보면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이다. "

USA투데이는 그녀가 숨진 다음날인 15일자 1면과 라이프섹션 커버스토리를 포함한 4개면에 걸쳐 그녀의 삶과 죽음의 여정을 소개하고, 그녀의 글에 울고 웃었던 독자들의 편지를 게재했다.

신문은 또 그녀의 정신을 기려 사내 월간 우수기사상을 헤이너 기자상으로 명명했다.
그녀의 모교 윌리엄&메리대학은 대학 시절 독서클럽을 주도했던 그녀의 활동을 기념, 도서관에 ´캐시 헤이너 도서기금´ 을 설립했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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