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1. 가천미추홀봉사단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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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가천미추홀봉사단 총재 취임식에서 단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필자.

1960년대 미국 유학 때의 일이다. 자신의 '봉사 시간'을 기록한 카드를 매단 줄을 목에 걸고 열심히 남을 돕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이들은 자부심도 대단했다. 내가 처음 본 자원봉사자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70년대 일본 유학 때도 이른 새벽 흰색 앞치마를 두르고, 빗자루로 마당을 열심히 쓰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봤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선진국처럼 21세기에는 봉사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릴 때부터 '봉사'정신과 습관을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린이봉사단에 대한 구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90년대 초만 해도 대다수 부모들은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아이들에게 무슨 봉사를 가르치느냐"고 푸념할 정도여서, 봉사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나도 어릴 적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뒤 오로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어릴 때 생각과 습관은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동인(動因)인 것이다. 봉사단 창립은 미래의 지도자가 될 아이들에게 실천을 통한 봉사의 참뜻을 일깨우려는 내 의지의 실현이었다.

초등학교 학생회장들로 봉사단을 구성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리더이자 모범생인 학생회장의 자부심과 긍지를 중.고교와 대학 때는 물론 사회에 나가서까지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이들이 차세대 리더가 되게끔 여러 방면에서 출중한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줘야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인천시교육청을 찾아갔다. "인천의 리더가 국가의 리더가 되고, 이 중에서 세계의 리더가 배출될 것"이라며 "미래를 이끌어갈 예비지도자에게 '참봉사 정신'을 일깨우고 싶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에서 흔쾌히 호응해 시내 각 초등학교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93년 5월 인천 시내 총 113개 초등학교의 학생회장 113명을 단원으로 한 가천미추홀봉사단이 발족했다. 이로부터 2년 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임원들이 달동네 노인들을 목욕시키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하곤 어린이봉사단을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 총재를 맡은 나는 창립식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아직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내가 정말 책임감을 가지고 잘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나는 "학생회장은 나보다 못한 이웃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지녔다"며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공부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이웃사랑과 봉사정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까지 14년간 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어린이는 2264명에 달한다.

나는 이들이 '봉사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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