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 여전한 여야 지도자|김영배<정치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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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 청산을 놓고 여야가 영수회담을 열겠다더니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일변, 여야간에 갑자기 냉랭한 바람이 불고 있다.
협상창구도 막히고 「극한대결」 이니, 「정국경색」이니 하는 섬뜩한 소리들이 불안스럽게 나돌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사정을 알고 보면 여야간에 참으로 한심스러운 정치작태들을 보게된다.
영수회담이 깨지게된 가장 큰 이유는 노태우대통령의 심기불편이다.
그 사연인즉 한창 미국에 나가 외교를 하는 중에 3야당 총재라는 사람들이 모여 『정권퇴진공동투쟁』을 고창 했으니 『등에다 총 쏜』 기분을 느꼈음직도 하다.
게다가 어느 야당총재가 미국대통령과 상하양원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노정부를 비판하고 노대통령의 의회연설에 참석치 말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연설불참권유가 사실이라면 이는 정녘 필부도 하지 못할 비열한 정치암수임에 틀림없다.
그들 스스로가 참여했던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을 구미에 맞지않는다고 퇴진운동을 벌인다는 것도 논리가 안 맞는 일인데 외교를 하겠다고 나가있는 동안 그 상대방에게 비난편지를 보내 연설불참을 권유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의 뒤안이 항상 당당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둠 속에서 비수를 날리는 식의 술수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더군다나 미국 측의 통상압력 등에 강경하게 반대하면서 또 한편으로 그들에게 매달리는 이런행태를 저들이 어떻게 생각했을는지 생각하면 저절로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다.
그러나 야당의 그런 행위가 몰지각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민정당의 당직자들 모습 역시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을 지도하는 중요 당직자들이 앞다투어 청와대의 분위기를 살펴 소리 높여 야당을 책망하더니 급기야 야당과의 협상분위기가 아니라고 모든 회담을 미뤄버렸다. 『대통령을 이따위 5공의 진흙탕에 끌어들일 수 없다』 는 것이다.
지난 3공·5공 시절의 권위주의에 철저히 찌든 눈치보기식 발언들이다. 대통령이 가장 큰 시국현안인 5공 청산문제에 초월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른 속셈이 있다해도 그런 발상, 그런 발언들이 지나치게 권위맹종이어서 서글프다.
5공이 청산되면서 여야 지도급의 이런 구태도 함께 청산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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