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카바레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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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발 이름만 내지 말아주세요. 아빠와 애들이 알면 우리가정은 끝장입니다.』
16일 오후 4시30분 탈선 카바레 단속반이 들이닥친 서울 석촌동 296의4 중동빌딩 주차장 지하 S카바레.
5개의 밀실까지 갖춘 어두컴컴한 1백50여 평의 실내한쪽 구석에는 1백여 명의 주부들이 머리만 탁자 밑에 감춘 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다른 한쪽 구석 카운터 주위에는 사과·버섯·파 등이 장바구니와 함께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요.』
『돈 받아먹을 땐 언제고 단속할 땐 또 언제요.』
카바레 안 조그마한 밀실 문틈으론『우리와는 어차피 악어와 악어새 아니냐』는 제비족들의 악다구니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에 앞서 시경단속반이 들이닥치자 제비족들은 철제 셔터를 내리고 의자·탁자로 바리케이드를 친 뒤 진입하려는 경찰에 빈 맥주병을 마구 던지며 완강히 저항했다.
사전 정보유출을 우려, 관할 강남경찰서에 통보조차 하지 않고 단속반으로 출동했던 시경 대 테러반은 그제야 강남경찰서에 병력지원을 긴급요청, 전경 1개중대가 부랴부랴 출동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관할경찰서도 물 먹이고 사고라도 났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사전 통보 못하는 사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알 것 아뇨.』
정작 기이한 풍경은 탈선주부들과 제비족들이 줄줄이 연행돼온 강남서 보안계 사무실에서 벌어졌다.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식은땀을 훔치는 관할서 당직반장과『오죽하면 강력범을 놓아두고 우리가 왔겠느냐』며 얼굴을 붉히는 시경 대 테러반장 사이에 오가는 설전.
같은 경찰끼리도 못 믿는 상호불신,「악어와 악어새」를 당당히 주장하는 제비족의 항변 속에 번번이 실패하는 경찰 카바레단속 실패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다.<김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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