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정부, 돈 퍼부었다···'갑툭튀 4분기' 성장에 2% 턱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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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부진했던 건설투자가 지난해 4분기 깜짝 반등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아파트 공사 현장. [뉴스1]

내내 부진했던 건설투자가 지난해 4분기 깜짝 반등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아파트 공사 현장. [뉴스1]

2.0%.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간신히 정부 목표치에 턱걸이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0.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우려했던 성장률 1%대 추락을 피한 건 지난해 4분기의 깜짝 성적 덕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시장 예상을 웃도는 1.2%(전기 대비)를 기록했다. 잠재성장률(분기별 0.67%)을 한참 웃돌 뿐 아니라, 2017년 3분기(1.5%) 이후 9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저조하던 성장세가 살아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요인을 뜯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는 최대 요인으로 꼽히던 건설투자가 갑자기 급증하며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4분기 건설투자는 건물과 토목건설이 모두 늘면서 6.3% 증가했다. 증가율은 2001년 3분기(8.6%) 이후 18년 만에 최고다. 3분기에 건설투자가 6.0%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추세 전환이다.

지난해 내내 부진했던 건설업이 4분기엔 왜 살아났을까. 정부가 재정지출을 최대한 늘리면서 사회간접자본(SOC)을 비롯한 건설업에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례적으로 건설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 건설투자의 역할도 크다”며 “필요한 건설투자는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토건을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2.0% 연간 성장률 사수’에 나선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성장률 2.0% 중 정부의 기여도가 1.5%포인트, 민간이 0.5%포인트다. 성장 엔진 역할을 해야 할 민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실상 재정을 통해 방어하는 정부 주도 성장인 셈이다.

정부 재정에 기댄 힘겨운 성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 재정에 기댄 힘겨운 성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이런 재정에 의존한 경기부양이 지속 가능하진 않다는 점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민간 부문이 크게 살아나기 어렵기 때문에 올해도 정부가 재정으로 성장을 지탱할 것”이라며 “정부 예산은 한정돼있기 때문에 당장의 성장률 수치에 연연하기보다는 한국경제의 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대비 0.4% 감소한 것도 눈에 띈다. 연간 GDI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건 1998년(-7.0%) 이후 21년 만이다. 실질 GDI가 마이너스라는 건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나쁘고,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이 수입품 가격보다 많이 하락한 게 큰 원인”이라며 “향후 소비 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장원석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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