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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주민청원 게시판’은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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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경기도는 지난해 1월 ‘경기도민 청원 게시판’을 개설했다. 추진하는 정책이나 지역 현안에 대한 주민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30일 동안 5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은 이재명 경기지사나 각 실·국장이 공식 답변을 한다. 지난 1년 동안 등록된 청원만 모두 7100여건. 하지만 경기도가 실제로 답변을 한 청원은 지난해 8월 6일 ‘성 평등 및 성인지 예산 조례’와 관련된 것이 유일하다.

현재 청원이 진행 중인 332건도 참여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참여 의견이 ‘0건’인 청원도 부지기수다.

경기도의 ‘주민청원 게시판’은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을 따라 한 것이다.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며 민선 7기 출범 이후 경기도 등 광역지자체는 물론 기초단체, 교육청 등이 앞다퉈 도입했다. 경기도에서만 용인·성남·이천·양평·여주·시흥·광명 등 10여개 지자체가 이런 게시판을 운영한다.

문제는 주민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청원 수도 많지 않지만, 청원이 등록돼도 지지하는 의견 수가 부족해 답변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용인시의 경우 481건의 청원 중 5건만 답변이 이뤄졌다. 성남시는 482건의 청원 중 3건만, 이천시는 60건의 청원 중 4건을 답했다. 답변이 이뤄진 청원이 한 건도 없는 지자체도 많다. 지자체 청원 게시판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무용론은 처음부터 예견됐다. 지자체의 경우 지역적인 사안의 청원이 많아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지자를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각 지자체가 내건 답변 가능 청원 참여 인원수는 성남시 5000명, 용인시 4000명, 양평군·여주시 500명 등이다. 특정 단체나 집단 등이 나서는 사안이 아니라면 답변 가능한 인원을 모을 수 없다.

또 민원인 입장에서도 화제가 될 만한 사안은 지자체 청원 게시판보단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이 이득이다. 결국 용인시는 다음 달부터 시민청원 시 답변 기준을 기존 4000명 이상에서 100명 이상으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주민청원 게시판 활성화 방안 찾기에 나섰다.

좋은 정책은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 도입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주민과 소통하겠다’면 그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방안을 들고나와야지 모양만 좋다고 마냥 쫓기만 하다간 전시용이란 소리만 듣기 십상이다.

최모란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