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과시하려 밤새 빌딩 불 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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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남북 체제대결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북한에서 내려온 비밀접촉 특사가 서울 한 복판의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놀다갔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30여년 동안 남북회담과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 분야에서 일해 온 이병웅(65) 한서대 교수. 그는 71년 4월19일 북측 김덕현 대표가 극비리에 판문점을 넘어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 정권 핵심인사들을 만나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교수는 "조선호텔 18층에 자리잡은 김덕현을 거물 재일교포로 위장시켜 극진히 대우했다"고 말했다. 김덕현은 낮에는 고위층을 면담하고 저녁에는 풍전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면서 놀았다. 외국생활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김덕현의 춤솜씨는 수준급이었다고 이 교수는 떠올렸다. 김덕현의 방문은 이듬해 7.4남북공동성명의 씨앗이 됐다. 이 교수는 70년대 남북 비밀접촉을 담당했던 체험을 담아 '평화의 기(旗)를 들고'(도서출판 늘품)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남북관계 비화들이 적지 않게 실렸다. 71년 9월 20일 판문점에서 열린 첫 남북간 접촉에서 서로 먼저 발언하려고 1분 이상 양측이 동시에 발언을 했던 일, 7.4공동성명 남측 초안을 받아든 북측 수행원들이 한자를 몰라 읽지 못했던 사연 등도 담았다.

적십자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남한에 내려온 북한 대표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속도로를 대한통운 트럭으로 가득 채웠다가 길이 막혀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도 들어있다. 민간 승용차 동원이 어렵자 화물트럭으로 도로가 붐비는 것처럼 보이려다 낭패를 본 것이다.

북측 대표단이 통과하는 서울 거리를 새로 페인트칠하고 빌딩 불을 밤늦도록 끄지 않도록 했던 일, 북한 대표단 숙소의 일제 엘리베이터에 국산상표를 덧붙였던 사연도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죽기살기로 자기 체제의 우월함을 과시해야 했던 게 당시 냉전시대의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월남전에 공보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69년 9월 중앙정보부 승공팀 기획관으로 남북회담 업무에 발을 들여놓았다. 곧바로 적십자 회담을 맡았던 그는 92년부터 2004년까지 적십자회담 남측 수석대표도 지냈다. 한적 사무총장과 총재 특보를 지낸 그는 지금 한서대에서 국제인도주의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북한이 쌀.비료를 주지 않는다고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공사를 중단한 건 인도주의 차원에서 안타까운 일"이라며 "대북 지원에 남한 국민들의 여론이 등을 돌리게 만든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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