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참배 논쟁 무산시킨 '후쿠다 불출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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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관방장관이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선두 주자인 아베 신조(安倍晉三) 관방장관과 겨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자로 꼽혀 왔던 후쿠다의 거취 표명으로 포스트 고이즈미 레이스는 결과가 뻔한, 그래서 관전자의 입장에선 맥빠진 승부가 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후쿠다의 불출마 선언으로 실종 위기에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의 기회다. 의심할 여지없이 아베 장관은 야스쿠니 참배 옹호론자다. 최근엔 명확한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이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작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10월 관방장관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다음 총리도, 다다음 총리도 참배를 했으면 한다"고 누누이 말해 왔다.

후쿠다 전 장관은 아베 장관의 대척점에 있다. 그는 관방장관 시절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파문을 일으키자 스스로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국립추도시설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냈다. 만약 이번 총재 선거가 '아베 vs 후쿠다'의 대결 구도가 됐더라면 최대 쟁점은 야스쿠니 참배 문제가 됐음에 틀림없다.

지난 5년간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는 매번 이웃 나라인 한국.중국과의 관계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하시모토 류타로 등 몇몇 전임자의 참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일본의 국가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정부나 국회에서 그 어떤 결정 과정이나 의사 수렴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외교관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행위가 실은 총리 개인의 신념이나 소신에 의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야스쿠니 문제는 주변국의 반발은 차치하더라도 일본 국내에서조차 찬반이 팽팽한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껏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 문제의 당사자인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는 마음의 문제인데, 이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논쟁을 원천 봉쇄시켜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야스쿠니 문제를 정면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하고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후쿠다의 불출마로 무산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또다시 다음 총리의 '마음의 문제'로 떠넘겨지고 해결의 전망은 한층 어두워졌으니 말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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