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A가 B보다 훨씬 좋은 약으로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서로 같은 약입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처방되는 칼슘채널차단제란 고혈압 치료제지요. 내용을 뜯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약을 먹지 않은 고혈압 환자가 향후 5년 이내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은 3% 정도 됩니다. 그러나 약을 먹게 되면 2% 정도가 심장마비에 걸립니다. 절대적 수치로만 보면 약 복용 전후 심장마비 확률의 차이는 1%에 불과합니다. 약을 복용함으로써 100명 중 1명의 심장마비만 예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를 상대적 수치로 표현하면 3%에서 2%로 감소하므로 33%나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똑같은 약이라도 효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반응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지요. 제약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33%란 상대적 감소를 강조할 것입니다. 약을 먹어도 100명 중 2명은 심장마비에 걸린다는 사실은 슬쩍 외면합니다.
고혈압 치료제의 가치를 폄하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사실 고혈압 치료제만큼 효능이 잘 입증된 약도 드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약회사의 마케팅 속에 감추어진 약물의 한계입니다. 첨단 신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혈압은 물론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약물로 떨어뜨려 줍니다. 심지어 뱃살.식욕.기분까지 알약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물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기본은 역시 올바른 섭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한다 해도 담배를 피우고, 운동하지 않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과로와 스트레스 속에 산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오늘날 인류의 평균수명을 향상시키는 데 가장 기여한 요인으로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항생제보다 상.하수도의 보급입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전염병에서 해방됐다고 보는 것이지요. 첨단 항생제를 아무리 강력하게 투여해도 외과의사가 손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수술하다 감염되면 복막염이나 패혈증으로 숨질 수 있습니다. 진정 건강을 원하신다면 약물에 의존하기보다 섭생이란 기본에 충실해 주시길 재삼 당부합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