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미 대사에의 충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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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 산고 끝에 새 미국대사가 16일 부임했다. 우리는 우선 도널드 그레그 대사가 한-미 관계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역할이 양국관계의 현안 타결에 크게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한미관계는 지금 90년대를 향한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이 국내 정치적으로나 국제관계에 있어서 질적으로 성장·성숙한데서 비롯되고, 또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의 변화에 기인할 것으로 본다.
미국은 6·25를 통해 침략을 격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화복구에 막대한 지원을 해줬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정치에 깊숙이 간여해 왔고 이 때문에 역대 독재자들과의 유착관계에서 반미감정의 씨가 뿌려졌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감정은 한미간 통상마찰의 확대로 더욱 증폭되었다. 5공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국민은 과거독재자와 미국을 동일선상에서 보고, 경제적으로는 과도한 압력을 가해 오는 대국주의 적 오만의 장본인으로 보는 의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의 한 가닥으로 그때까지 가상적으로 인식되어 온 소련·중국·동구권 등「북방」에 대한 경제·정치적 교류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한국 민이 미국과 세계 및 자신을 보는 시각이 그레그 신임대사가 미C1A책임자로 서울에서 활약했던 초년 대 초반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그레그 대사의 전력을 들어 대한외교를 공작차원에서 다루려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견해는 기우라 보지만 그때와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체험으로 인식하는 노력에 우선 순위를 두기 바란다.
90년대를 내다보는 한미관계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현안을 안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 거의 미·서방 일변도로 존재해 온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으로 다변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의 북방외교는 남북한 관계의 전개를 위해서나 경제적 활로개척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이 점을 미국은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도 대아시아정책에 있어서 고르바초프 소련서기장의 적극적 접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해 미국이 한국의 북방정책을 탈미의 가능성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 세계가 서구권, 아메리카 권, 아시아-태평양 권으로 경제블록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이 때에 한국에 대한 지나친 통상압력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좁혀서는 안될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마찰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을 서로 조화시켜 나가는 노력을 쌍방이 다같이 집중해야 될 것이다.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계속 미국의 우방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다. 앞으로 무역마찰, 민주화, 주한미군의 장래, 미국의 대 북한관계 등 여러 현안을 풀어 나감에 있어 미국은 이와 같은 우리의 기본적 친선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 그레그 대사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극히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미국 이익만 내세우고 있는 조 야의 압력과 미국의 의도를 음모로만 보려는 한국 안의 일부세력 사이에서 정상적 국가관계를 중재해 나가야 할 그의 역할을 우리는 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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