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월성 원전 1호기, 기어코 멈출 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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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오늘 월성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안건을 심의한다. 지난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이 “날치기”라고 비판받는 이사회를 통해 조기 폐쇄를 결정한 지 1년4개월 만이다. 원안위를 통과하면 약 7000억원을 들여 재가동한 국민의 자산이 자칫 고철이 될 판이다.

여기까지 이른 과정은 개운치 않다. 1983년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 1차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났다. 한수원은 7000억원을 투입해 설비를 교체하는 등 안전성을 강화한 뒤 원안위 승인을 받아 2022년까지 연장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재가동 방침은 정권과 함께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월성 1호기를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수원 이사회는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안전성이 아니라 경제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으나 논리에 허구가 드러났다. 월성 1호기 이용률을 50%대로 터무니없이 낮춰 놓고서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수원은 이사들에게 경제성을 분석한 구체적인 계산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사회 개최 날짜와 장소는 바로 전날 벼락치기로 이사들에게 통보했다. ‘날치기 이사회’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한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폐쇄를 밀어붙였다. 월성 1호기에선 아예 연료를 뺐다. 올 2월에는 원안위에 영구정지 신청(운영변경 허가 신청)을 냈다. 원안위는 기술 검토를 거쳐 오늘 안건으로 다루게 됐다. 이대로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거의 확정적이다. 원안위가 월성 1호기 재가동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다. 단지 한수원의 월성 1호기 영구정지 후 관리 계획이 제대로 세워졌는지만 검토할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보완을 요구할 것이고, 없다면 승인할 것이다. 승인이 나면 한수원은 일부 설비를 폐기할 수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이다.

그러나 오류로 얼룩진 한수원의 결정을 바탕으로 소중한 국가 재산을 공중분해할 수는 없다. 애초 정부의 성급한 탈원전 정책부터가 과학적·경제적 논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수원의 결정 과정은 더더욱 그렇다. 국회도 문제라고 판단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 행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감사원은 곧 감사를 시작한다. 그런데도 막무가내식으로 영구정지 최종 절차를 밟아가는 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다.

원안위는 일단 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영구정지 승인을 보류해야 마땅하다. 정권에 코드 맞추듯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밀어붙인 때문에 한전은 적자의 수렁에 빠지고 국내 온실가스 배출은 늘었다.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도록 법으로 규정한 원안위가 한수원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