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점거 농성 8일째… "지도부 몰래 배관 타고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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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원 538명 이탈 … 1300여 명 남아=이날 오전 건물에서 빠져나온 오모(43.비계공)씨는 "아내가 아파 더 머물 수 없었다"며 "집행부의 허락과 확인 절차를 거쳐 4~5층 계단에 쌓인 의자 일부를 치운 뒤 기어 나왔다"고 말했다. 또 "창고에 노조원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라면.빵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모(48.제관공)씨는 "이날 오전 8시쯤 노조 간부에게 내보내 줄 것을 요구했으나 2시간 동안 답변이 없어 '아파서 나가야겠다'고 노조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한 뒤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경찰의 검색을 피하기 위해 김으로 싼 '김밥 담배'를 들여오곤 했다"고 말했다. 18일 건물 배관을 타고 탈출한 김모(26)씨는 "안에 있는 노조원 대부분이 나오고 싶어 하지만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탈자의 80% 정도가 배관을 타고 빠져나가고 있다"며 "이탈자가 늘자 노조 '선봉대'가 수시로 인원 파악을 하고, 노조원을 소대로 나눠 5층 출입문에서 감시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이탈자는 모두 538명이며 아직 건물 안에 1300여 명이 남아 있다.

◆ 경찰 "부상자 나오면 문책 당해"=경찰은 15, 16일 두 차례 본사 건물 진입을 시도한 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전기를 끊고 방송으로 자진 해산을 권유하는 게 고작이다. 진압 과정에 생길 수 있는 인명 피해를 우려해서다. 한 경찰 간부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를 진압하면 부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해 경찰의 책임을 묻는 풍토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하긴 어렵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본사 건물 구조도 작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폭이 1.2m씩인 두 개의 비상계단을 노조원들이 의자로 틀어막아 놓은 상태여서 진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만간 진입작전을 펼 방침"이라고 밝혔다.

포항=홍권삼.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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