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의자 과거 강도·폭력혐의 구속···3명은 살릴 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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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모(56)씨가 1990년 강도예비 및 폭력 등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7차 범행 이후다.
이씨의 DNA가 검출된 7차 사건과 9차 사건 사이(8차는 모방범죄)의 범행 공백이 2년이나 되는 만큼 당시 구금 등으로 범행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씨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두 저지른 진범이고, 당시 구금 기간이 더 길었다면 9차, 10차 사건은 물론 처제 살인 사건 등 최소 3명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26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이씨는 1989년 9월 26일 0시55분쯤 수원시 권선구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들어와 집 안 동정을 살피다 집주인에게 발각됐다. 당시 면장갑을 준비하는 등 범행을 계획한 정황도 나왔다. 이씨가 가정집에 침입한 시기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7차 범행이 발생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였다. 경찰에 넘겨진 이씨는 강도예비 및 폭력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1심 재판부는 1990년 2월 이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선고 전의 구금 일수 중 130일을 형에 산입했다.

징역형에 항소-2심서 집행유예 

이씨는 즉각 항소했다. 그는 "모르는 청년에게 구타를 당해 그를 쫓던 과정에서 피해자의 집에 들어간 것이지 금품을 빼앗기 위해 흉기를 들고 피해자의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개월 뒤 열린 2심에서 재판부는 이씨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초범이고 실제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경미한 점, 피고인의 가정형편이 딱한 점 등 여러 가지 정상에 비추어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선고형은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2심 선고가 난 1990년 4월 19일 석방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집행유예 석방된 뒤 7개월 뒤 9차 사건 발생 

7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8년 9월 화성군 팔탄면에서 안모(당시 52세)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씨가 구속된 이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1988년 9월에 발생한 8차 사건도 모방범죄로 확인됐다.
2년간 잠잠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이씨가 석방되고 7개월 뒤인 1990년 11월 9차 사건이 발생하면서 깨졌다. 최근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7차, 9차 사건 증거물에선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

이씨가 구금돼 재판을 받고 석방되기 전까진 범행이 발생하지 않은 셈이 된다. 만약 이씨가 모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저질렀고, 당시 1심 재판부가 이씨에 대해 좀 더 준엄한 판결을 내렸다면, 아니면 2심 재판부가 원심판결을 유지했다면 9·10차 사건, 더 나아가 처제 살인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5년째 복역 중이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프로파일러 9명을 동원해 이씨의 심리 분석에 나섰다. 이씨가 군을 제대한 뒤인 1986년 이후 화성·수원·청주 지역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과 이씨의 연관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목격자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법 최면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수원=최모란·진창일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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