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한국인의 무덤서 살아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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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30)이 ‘한국인의 무덤’ 요미우리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중심에까지 우뚝 선 비결이 뭘까. 성적이 워낙 좋고 일본야구를 2년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느낌은 또 달랐다.

지난 2월 미야자키 스프링캠프부터 이승엽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던 스포츠호치 기자들에게 물었다. 이승엽 담당 기자들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승엽은 요미우리 선수들과 정말 잘 어울린다. 팀원들이 모두 그를 좋아해 이승엽은 야구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요미우리 선수단에 융화돼 있었다. 훈련 중간에 이동할 때도 10m 이상 혼자 걷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동료들과 얘기하고 장난치고 웃는다. 주장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던 삼성 시절과 비슷했다.

요미우리 선수들 홍보를 맡고 있는 사카이 씨는 “정말 겸손하고 예의 바른 선수다. 구단 직원들도 모두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불편할 정도로 예절을 차리는 일본에서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따져보면 이승엽의 생활 태도가 짐작된다.

이승엽은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차별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팀 분위기도 딱딱하지 않다. 겉돈다거나 조금만 부진하면 2군에 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상조회장 다카하시를 비롯한 선수들이 이승엽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을 만큼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승엽이 지바 롯데의 잔류 요청을 뿌리치고 요미우리를 선택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한국에서 특급 선수였던 정민철(한화)과 정민태(현대)가 마땅히 기회도 잡지 못한 채 2군에서 허송세월했고. 요미우리에서 키워진 조성민(한화)마저 차별을 받았다고 서러워했다. 요미우리는 ‘한국인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지난 해 지바 롯데서 어느 정도 기량을 검증받았다. 2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일본야구를 이해하고 있었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만큼 일본말도 곧잘 한다. 요미우리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과 달리 처음부터 ‘장벽’이 낮았던 데다 이승엽 특유의 붙임성으로 여기저기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에게 벽을 낮췄고. 이승엽은 품성과 기량으로 장애물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오사카=김식 기자 (seek@jesnews.co.kr)

<출처 :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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