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연휴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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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무처는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신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리나라의 공휴일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돌렸다.
「그때」란 다름 아닌 지난 1월「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바꿀 때의 얘기다. 구정, 추석 3일 연휴 제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후닥닥 확정해 버렸다. 사람들로부터 전화여론을 들었더니 좋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도 전국적인 연방휴일(9일)을 빼고는 주의회의 토론에 부쳐 공휴일을 정한다.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미국사람들이라도 신중을 잃지 않는다. 국회심의는 고사하고 공청회 한번 없이 공휴일을 마치 공짜 배급 주듯 하는 나라는 드물다.
요즘의 연휴시비에 맞춰 총무처가 만든 보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연휴 후진국임에 틀림없다. 『미국, 영국, 독일 등 구미 선진제국의 공휴일 수는 실제로 평균 1백10일이며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 대만도 우리보다 공휴일이 많다』는 것이다. 멀리 스리랑카, 수리남 같은 나라의 공휴일까지 찾아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논다는 것을 광고했다.
세계주요 80개국의 공휴일평균치 95일과도 비교하고 우리는 크게 뒤진 71일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는 앞으로 선진국수준에 맞추어 적어도 39일, 세계의 평균 공휴일 수에 따라가기 위해서도 양일은 더 놀아야 옳다.
연휴바람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을 분야는 역시 경제계다. 말이 연휴 3일이지 오고 가고, 그 동안 일손이 풀어질 생각을 하면 공치는 날은 적어도 닷새는 된다. 연중 한번도 아니고 몇 차례 그런 연휴를 겪고 나면 제아무리 탄탄대로를 가는 경제라도 빈자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까짓 경제야 뒷전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지금 경제성장은 뒷전이라고 말할 장수는 없다. 아마 경제가 흔들리면 누구보다 먼저 정부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도대체 국민소득수준, 임금수준, 생산성, 국민경제의 구조, 노동의 질을 접어놓고 다른 나라의 공휴일 수만 따지는 총무처는 구름 위에서 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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