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인생」에 일의 보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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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돈, 건강, 그리고 삶의 보람을 노후생활을 지탱하는 세 가지 요소로 노인들은 어느 여론조사에서나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젊었을 때의 야망이나 목표의 성취 여부를 불문하고 이미 앞을 막고 나선 인생의 황혼 앞에서 가능하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성한 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 사회를 위해 기여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같은 노인들의 소박한 소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70%가량이 경제적 자립과 일하는 즐거움, 심신의 건강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하나 겨우 20%만이 취업해 있는 상태다. 나머지 대부분 노인들은 그래서 노인정 구석이나 공원의 나무그늘 같은데서 할일 없이 배회하거나 화투짝을 만지는 정도로 무료하고 답답하게 지겨운 시간을「죽여 가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일자 중앙일보 사회면 머리기사는『백발의 근로자들 꼼꼼한 일손 만세』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노인사회에 밝은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원주에 있는 한일 전기회사에서는 65세 이상의 남녀노인 30명이 손자 손녀 뻘 되는 20대 근로자들과 함께 어울러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인력난도 덜고 아직 여력이 있는 노인들에게 일의 보람도 되찾게 하려는 것이 이 회사의 뜻이라니 그 착상이 매우 합리적이고 건실하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당초에 회사측은 일의 능률과 사고위험을 걱정했으나 노인들의 성실한 근무 자세가 젊은 공원들에게 오히려 모범이 되는 등 작업장 분위기마저 활기가 돈다니 싼 임금까지 치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를 갖게 된 노인 근로자 쪽에서 보면 거추장스럽기만 하던 시간을 일에 열중함으로써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찾을 수 있고, 또 적으나마 임금을 받게 됐으니 남들 앞에 떳떳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65세의 한창 장년기에 강제로 직장을 그만 둬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개인의 정신·신체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는 노인으로, 따라서 무능인 취급을 받고 있다. 사회적 거세 감과 경제적 박탈 감서 오는 우울증이 각종 질병(성인병)을 유`이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령인구 약 2백만 명이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병들게 하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노인 각자의 개인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배려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전반적인 취업난을 내세워 노인들에게 일을 주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의 근로 영역과는 분명히 구분해 노인들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 비단 원주의 한일 전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인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다시 국가에 기여하고, 그래서 삶의 보람도 안겨 주기 위해서는 기업과 사회가 유대와 협력을 강화하여 그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취업 이외에도 주거노인의 보살핌과 무의무탁한 노인의 보호문제도 우리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 대책을 미리 강구해야 할 또 하나의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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