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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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역은 어디일까? 서울역이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도, 강원도에서도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엔 내려간다는 말을 쓴다.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아마도 ‘언제 내려가야 덜 막힐까’ 궁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때도 무의식적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쓰게 된다.

서울(한양)은 왕조시대에는 왕이 거주하는 곳일 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한 나라의 요소들이 집중되는 곳이었다. 백성들에게는 높은 곳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쓰게 됐다. 한자어에도 상경(上京), 하경(下京) 또는 낙향(落鄕)이란 단어가 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여전히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엔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고속도로의 방향을 얘기할 때 상행선·하행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말은 지방을 낮추어 얘기하는 차별적인 용어다. 지방분권·지방자치의 시대인 요즘엔 맞지 않는 말이다. 지방도 서울 못지않게 특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삶의 질이 높은 곳이 많다.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으로 내려간다” 대신 “○○으로 간다”고 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문제가 없다.

흔히 쓰는 ‘촌스럽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에는 지방이나 농촌은 무언가 뒤떨어지고 부족하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번 추석부터는 ‘지방으로 내려간다’나 ‘촌스럽다’는 말을 줄여 쓰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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