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당만의 개헌 논의는 정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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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57회 제헌절을 맞아 열린우리당 출신 임채정 국회의장이 '헌법연구조사위'를 만들겠다고 했다. 형식은 의장 자문기구지만 예산이 들어가는 개헌 연구 기구로는 1987년 이래 처음이다. 이 때문에 기구의 발족과 함께 시민단체 등이 가세하면서 개헌 논의가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이날 개헌론을 다시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하의 개헌 논의를 반대하고 있다. 심각한 찬반 갈등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감수할 만큼 시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의 여권 움직임은 야당의 뜻과 상관없이 여당이 독자적으로 개헌론의 카드를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르고 있다. 현실적으로 야당의 동의 없이는 개헌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여당의 일방적인 개헌론은 '의논'이 아니라 '논란'과 '혼란'만을 부르는 것이다.

개헌론의 쟁점은 여러 가지다.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에다 내각제 목소리까지 있다. 나아가 남북관계의 변화에 맞춰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되어 있는 영토 조항을 고치자는 의견도 있다. 쟁점마다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에 있어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절차다. 국회의 3분의 2 동의가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권력구조나 영토.통일 문제는 여야가 생사를 걸고 다툴 만한 것이어서 개헌에선 '협의'와 '합의'가 필수적이다. 임 의장이 야당과 의논하지 않고 국회 예산이 들어가는 개헌 기구를 만드는 것은 절차가 틀렸다. 여권은 개헌을 원한다면 먼저 국회 내 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야당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