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認知)과학에선 이런 현상을 '저인지(低認知)'라고 한다. 필요한 생각을 한두 단어로 떠올리게 해 주는 프레임(frame)이 결여된 상태를 뜻한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 정도로 해석된다. 이 프레임이 미국에선 현재 '언어를 통해 정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꾼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다. 그는 민주당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두 차례나 패한 원인을 프레임의 결여에서 찾았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공화당이 새 용어와 새 프레임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알리는 데 성공한 반면 민주당은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세금 논쟁을 한 예로 들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금 인하(tax cut)' 대신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기발한 용어를 사용했다. '구제'라는 단어가 갖는 프레임은 무얼까. 구제가 있는 곳엔 고통이 있고, 고통 받는 자가 있다. 또 그 고통을 없애주는 자가 있다. 그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 영웅에 반대하는 자는 악당이다. 결국 '구제'란 용어가 대변하는 프레임 속에서 세금 논쟁을 벌이면 부시는 영웅, 민주당은 악당이 되기 일쑤다.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출판사)'가 한국에도 소개됐다. 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에 빠지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지난 대선에서 두 차례나 패한 한나라당의 눈길을 끈 것은 불문가지다. 한나라당 인사들이 대선 필승을 위해 이 책을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새 용어, 새 프레임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일 게다.
하나 해묵은 용어 '색깔론'이 판을 쳤던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을 보자면 새 프레임 짜기는 틀린 게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앙데일리 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