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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fram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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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타히티의 자살률은 왜 높을까. 인류학자 로버트 레비가 의문 해결에 나섰다. 1960년대의 일이다. 조사 결과 타히티에는 '슬픔'이라는 개념을 가진 단어가 없었다. 슬픔을 느끼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일 용어가 없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다. 레비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절실히 필요한 '슬픔'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높은 자살률이 나타나고 있다고.

인지(認知)과학에선 이런 현상을 '저인지(低認知)'라고 한다. 필요한 생각을 한두 단어로 떠올리게 해 주는 프레임(frame)이 결여된 상태를 뜻한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 정도로 해석된다. 이 프레임이 미국에선 현재 '언어를 통해 정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꾼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다. 그는 민주당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두 차례나 패한 원인을 프레임의 결여에서 찾았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공화당이 새 용어와 새 프레임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알리는 데 성공한 반면 민주당은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세금 논쟁을 한 예로 들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금 인하(tax cut)' 대신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기발한 용어를 사용했다. '구제'라는 단어가 갖는 프레임은 무얼까. 구제가 있는 곳엔 고통이 있고, 고통 받는 자가 있다. 또 그 고통을 없애주는 자가 있다. 그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 영웅에 반대하는 자는 악당이다. 결국 '구제'란 용어가 대변하는 프레임 속에서 세금 논쟁을 벌이면 부시는 영웅, 민주당은 악당이 되기 일쑤다.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출판사)'가 한국에도 소개됐다. 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에 빠지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지난 대선에서 두 차례나 패한 한나라당의 눈길을 끈 것은 불문가지다. 한나라당 인사들이 대선 필승을 위해 이 책을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새 용어, 새 프레임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일 게다.

하나 해묵은 용어 '색깔론'이 판을 쳤던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을 보자면 새 프레임 짜기는 틀린 게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앙데일리 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