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내리고도 시장 요동시킨 파월의 한마디···트럼프도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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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FOMC는 이날 미국의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FOMC는 이날 미국의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 방어벽을 쳤다. 정책금리를 인하하며 세계 경기 둔화의 파고가 미국까지 번지지 못하게 예방에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지른 무역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세계 경제와 그에 따른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2008년 12월 이후 10년7개월만의 인하 #"향후 인하 지표따라 판단"에 시장 요동 #파월 "한번 인하라 하지 않았다"며 진화 #트럼프 "언제나처럼 실망스럽다" 불만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책금리를 연 2.0~2.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세계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 이후 10년7개월만의 인하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는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해 Fed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3년7개월만에 방향을 반대로 돌렸다.

 금리 인하는 시장의 예상대로였다. 내심 자이언트 스텝(0.5%포인트 인하)을 기대했던 시장은 연내 추가 인하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파월은 매의 발톱을 감추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인하는 장기적인 금리 인하의 시작이 아니라 경기 둔화에 선제 대응하는 ‘보험성 인하’로 ‘중간 사이클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시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했던 ‘공격적 금리 인하의 시작’이란 기대와 분석에 선을 그었다.

 사실 미국의 경제 상황과 경기 지표로 볼 때 금리 인하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 경제는 최장기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2.1%(전분기 대비, 연율)로 시장의 예상을 웃돌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6%로 상향조정했다. 미국의 실업률(3.7%)은 50년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경제가 뜨거운 만큼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실제로 이날 FOMC에서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Fed 총재와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Fed 총재 2명이 동결을 주장하며 금리 인하에 반대했다.

 FOMC내의 반대 기류 등을 의식한 듯 파월은 “이후 통화 정책 판단은 경기 지표에 따라 내리겠다”고 덧붙였다. Fed가 연내 추가 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며 시장이 요동쳤다.

 그러자 파월은 “인하가 단 한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바로 한 발짝 물러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추가 인하로 문을 열어뒀지만 Fed가 더 많은 금리 인하 사이클로 접어들었다고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기준금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파월의 오락가락 발언에 시장은 볼멘 표정이다. Fed의 스텝이 꼬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그룹 제프리스의 워드 매카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OMC 성명서가 모호한데다 파월의 발언과 인하 반대 소수 의견의 등장이 시장을 망치고 있다”며 “인하의 효과와 달리 시장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 등 Fed가 매우 이상한 입장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파월의 애매한 발언이 ‘시장이 원하는 걸 해줄만큼 해줬으니 앞으로는 갈길을 가겠다’고 마이 웨이를 선언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의 어정쩡한 태도는 ‘중앙은행 정치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중앙은행 총재의 고뇌를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파월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책적 불확실성이 (통화정책) 결정을 복잡하게 한다”며 “무역 등의 요인이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이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무역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를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파월의 어깨를 짓누르는 트럼프의 공세와 압박은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는 Fed의 긴축 모드가 미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을 수차례 드러내며 이번 FOMC 이전에는 ‘빅 컷(0.5%포인트 인하)’을 대놓고 압박했다. 이날 Fed의 금리 인하 폭과 향후 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파월이 실망시켰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매의 발톱을 자르지 않은 파월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Fed의 이번 금리 인하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다음달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일본은행도 언제든 돈 줄을 풀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경쟁이 ‘통화 냉전’으로 확대되면 Fed도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다.

 꿈쩍도 않는 미국의 저물가도 Fed에는 부담이다. 디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금리 인하 요인도 있는 만큼 Fed의 목표치(2%)를 밑도는 물가 상황이나 향후 전망이 Fed의 등을 떠밀 수도 있다. 나단 시츠 PGIM 채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이션 우려로 Fed가 올해 추가로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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