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청바지 입은 철없는 백발, 그게 바로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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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35)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도대체 79살 남자를 그리는 인간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냐고
주위에 많은 사람이 묻는다.
쑥스럽지만 나를 잠깐 그려본다.

인생 잘 굴러가다가 15년 전 어느 날,
청천벽력의 구강암 진단으로 S대 병원에서 1차 수술,
그리고 10년 후 암 재발, 2차 수술로 오른쪽 얼굴과 목에
흉할 정도의 칼질한 흔적을 남겼다.

더구나 30회의 방사선치료 후유증으로
치아마저 왕창 빠져 하루아침에 합죽이 신세로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처참한 몰골로 바뀌었다.

잘 나가던 인생 말년에 닥친 불운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벼랑으로 떨어질까를 수십 번 망설였지만, 솔직히 용기가 없었다.
아니, 신이 나에게 특별히 선택해 준
‘일러스트레이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용감하게도 내방에 작업실을 차리고
컴퓨터와 치열한 싸움 끝에
도합 여섯 권의 ‘부부 그림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여러 겹으로 그어놓은 나이도 애써 모른 체하고
젊은 아이들처럼 청바지와 하얀 운동화를 죽으라고 신고 다닌다.
이런 철면피의 나를 이웃 사람들은 그런다.
“바람에 휘날리는 백발을 폼으로 사는 79살 젊은 노인”이라고….

사실은 폼은 아니고 천성일 뿐인데….
아직은 허리가 굽은 ‘노인’ 모양새는 아니다.
걷는 발걸음도 무겁지는 않다.
생각 같아선 저승사자의 부름에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새벽에도 제시간에 맞춰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평소 습관대로 바로 컴퓨터를 켠다.
며칠 전 착상한 새로운 소재의 ‘그림 에세이’를 펜 마우스로
거침없이 그려나간다. 이것 역시 천성인 것 같다.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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