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회 제패 '장충고에 무슨 일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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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장충고가 올 고교야구를 평정하고 있다. 4월 제40회 대통령배대회에서 창단 43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을 일궈냈고, 7일 끝난 제60회 황금사자기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올해 두 번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올해 고교야구 최고의 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43년 만의 첫 우승이 시사하듯 장충고는 야구 명문교가 아니었다. 중학교 유망주들이 선호하는 학교도 아니었고, 야구 환경도 열악했다. 학교 운동장은 좁고 학교의 지원도 넉넉하지 못했다. 부모와 함께 학교를 찾아왔다가 "여기서 어떻게 야구를 하느냐"며 돌아가는 선수가 허다했다. 이런 악조건과 별 볼일 없는 성적이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장충고의 변화는 유영준(44) 감독이 부임한 2002년 시작됐다. 이수중학교에서 6년간 감독을 지낸 그는 장충고를 맡고 나서 병폐처럼 고교야구를 갉아먹는 몇 가지를 없앴다. 우선 그는 학부모가 야구부원들의 식사 뒷바라지를 하던 악습을 없앴다. 학교 급식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자 그 과정에서 나오던 부모들의 간섭과 뒷얘기들이 없어졌다. 그는 또 구타와 욕을 없앴다. 그의 지론은 분명하다. "가장 민감한 시기의 청소년이고, 학생들입니다. 그들이 믿고 따르게 하려면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게 먼저죠."

선수와 감독 간에 믿음이 쌓였고, 이런 사실이 야구계에 퍼져 나갔다. 중학교 유망주 가운데 "장충고에 가면 좋다더라"는 말을 듣고 제 발로 찾아온 선수들이 생겼다. 올해 두산 베어스에 1차지명을 받은 에이스 이용찬도 그중 하나다.

또 중학교 시절의 제자 가운데 세칭 명문사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감독님에게서 배우고 싶다"며 따라온 제자도 있다. 최고 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는 이두환이다. 이렇게 선수들이 모였고, 팀워크가 다져졌다.

그는 또 형편이 어려운 선수부터 챙겼다. 장충고 야구부 1개월 회비는 40만원. 이 돈으로 장비를 사고, 훈련 경비를 댄다. 서울 고교 야구팀 가운데 가장 적게 돈을 쓴다. 그는 서울 고교야구 감독 가운데 유일한 교사 감독이다. 그와 37명의 동료 교사들은 한 달에 1만원씩 추렴해 가난한 선수를 돕는다. 일종의 장학금이다. 그 가운데서 믿음의 두께는 더 두꺼워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승리에 대한 집착을 없앴다. 그는 두 번의 결승전에서 에이스 이용찬 대신 '세 번째 투수' 전진호를 모두 선발로 냈다. 주위에서 "이용찬을 내세워 밀어붙여야지 우승할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선수를 보호하고, 팀을 먼저 생각했다. 전진호는 두 번 다 잘 던졌고, 장충고는 두 번 다 우승했다.

그에게 "이제 봉황기 대회다. 3관왕을 노려볼 만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씩'웃더니 "이제 1, 2학년에게 기회를 줄 때죠…"라고 말했다. 이게 장충고의 힘이다. 다른 학교팀에도 귀감이 될 만하지 않은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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